재보궐 선거가 불과 3주도 남지 않은 가운데 여권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땅 투기 사태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파장 등 대형 악재를 맞았다. 사회적 이목이 두 악재에 쏠린 탓에 야권은 두 후보 간에 신경전을 벌이며 방심한 모양새다.
먼저, LH 사태는 그렇지 않아도 국민적 불신을 낳은 부동산 정책과 맞물리며 내년 대선까지도 영향을 끼칠 태풍의 눈이 됐다.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이에 모든 선출직 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별검사와 전수조사를 꺼내들고 야당인 국민의힘이 요구한 국정조사까지 받아들며 승부수를 던졌다.
여권에 집중되던 LH 사태에 대한 비판이 특검·전수조사·국정조사 추진으로 다소 분산되긴 했지만, 정권심판론은 쉽사리 가시지 않고 있다.
19일 공개된 한국갤럽 재보궐 선거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의견은 36%에 그친 반면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50%로 앞섰다.
특히 부동산 문제에 민감한 서울의 경우 야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답이 61%에 달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세가 높은 부산·울산·경남(부울경) 59%보다도 높은 수치다. 여당 후보 당선 의견 또한 서울은 27%로 부울경 34%보다 낮았다.
서울은 그렇지 않아도 정권심판론이 강하게 작용하는데 추가 악재가 터졌다.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가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2차 가해에 대해 토로해서다. 그는 성추행 사건 발생 당시 자신을 ‘피해호소인’이라 칭한 남인순·진선미·고민정 민주당 의원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고, 민주당 서울시장이 당선되면 일상 복귀가 어렵다는 언급도 남겼다.
이어 국가인권위원회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성희롱 사실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직권조사 결정문을 추가 공개하기도 했다. 2016년 7월~2020년 2월 박 전 시장이 늦은 밤 피해자 A씨에게 텔레그램으로 “좋은 냄새 난다, 킁킁” “혼자 있어? 내가 갈까” 등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러닝셔츠를 입은 셀카 사진과 여성의 가슴이 부각된 이모티콘 등을 보낸 내용이다.
이에 결국 고 의원이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캠프 대변인직에서 사퇴한 데 이어 남·진 의원도 공동선거대책본부장직을 내려놨다. 박영선 캠프 관계자는 통화에서 “세 의원이 스스로 판단한 데 대해 박 후보는 존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만 피해자는 당 차원의 징계를 요구했던 만큼 문제의 세 의원에 대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박 전 시장 성추행 사태의 파장은 가라앉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양향자·박성민 최고위원은 피해자 기자회견 직후 공식 사과 표명을 하며 당 차원의 조치를 요구한 상태지만, 아직까지는 징계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 핵심관계자는 “세 의원에 대한 징계 등 추가 조치는 아직은 거론되지 않고 있다”고 했고, 양 최고위원 측은 “추가 조치를 지도부에 요구를 한 상태이니 앞으로 논의가 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고군분투하는 통에 야권의 실책은 비교적 부각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인지 아귀다툼에만 빠져있는 모습이다. 오세훈 국민의힘·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가 그것이다.
협상 과정에서 서로를 향한 힐난이 오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가 서로 자신이 조금이라도 유리한 방식을 채택하려 벼랑 끝 협상을 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네거티브가 극단까지 달했다. 국민의당은 오 후보 측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상왕론’을 제기하며 비난했고, 국민의힘은 안 후보에게 그의 부인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가 ‘여상황제’라고 맞받았다. 이에 안 후보가 김 위원장의 부인이 김 교수와 동명이인이라며 상왕이라 비꼬았고, 김 위원장은 “정신이 이상하다”고 힐난했다.
그 결과 19일까지도 두 후보는 단일화 결론을 못 내 각자 후보 등록을 하게 됐다.
장기화되는 단일화 혼선에 야권에서 원성이 터져 나오자 책임론에서 벗어나고자 두 후보가 같은 시각에 서로 상대의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혀 ‘양보 경쟁’을 하기도 했다. 끝까지 서로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이를 악무는 모습이다.
야권이 아귀다툼에만 매몰되는 건 판세가 자신들에게 기울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LH와 박원순 사태가 민주당에게는 단기간에 해소하지 못하는 악재인 만큼, 특히 서울시장의 경우 단일화만 되면 이긴다는 계산에 두 후보가 과열경쟁을 하는 것이다.
한편 인용된 여론조사는 16~18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5명 대상으로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집전화 RDD 15% 포함)해 전화조사원 인터뷰한 결과다. 응답률은 15%,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