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각기 수출하려는데 냉매 빼라고?"…매년 3000건씩 쌓이는 무역기술장벽

입력 2021-03-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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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의 보고서 발표…TBT 건수 최근 4배 가까이 증가

#냉각기 제조업체 B사는 인도 수출을 위해 샘플 통관을 마치고 본격 수출을 시작했지만, 인도세관에서 냉각기의 냉매를 제거하라는 통보를 갑자기 받았다. 냉매를 제거해야만 냉각기를 수출할 수 있었던 인도의 기술규정을 제대로 몰랐던 탓에 발생한 일이었다. B사는 여러 노력 끝에 냉매가 오존층 파괴물질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문제를 해결했고, 이를 통해 수출국 현지의 무역기술규제에 대한 사전 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 대두와 더불어 주요 수출국을 중심으로 무역기술장벽이 늘어나면서 우리 수출길이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1일 ‘무역기술장벽(TBT) 동향과 대응과제’ 보고서를 통해 최근 무역기술규제의 동향과 특징을 분석하고 정책과제 및 대응책을 제시했다.

무역기술장벽은 국가 간의 서로 다른 기술규정과 표준 등으로 인해 무역에 장애가 발생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것으로, 대표적인 비관세장벽 중 하나다.

무역기술장벽, 최근 15년 사이 4배 증가

(자료제공=대한상의)
(자료제공=대한상의)

보고서에 따르면 무역기술장벽(TBT)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연평균 11%씩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18년부터는 3년 연속 3000건 이상의 기술장벽이 생겨나며 매년 최대치를 경신했다. 최근 15년 사이 전 세계 TBT 통보 건수는 3.7배 증가했고, 그중 우리의 10대 수출국 규제는 5.2배 늘었다.

WTO에 보고된 신규 TBT 통보문(누적 기준)은 유해물질 사용제한 등 건강·안전 관련 사항이 1만3638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기술규격 등 품질 관련 사항이 4575건, 허위표시 등 소비자 보호 관련 건이 4401건, 환경보호 3444건 순이었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1847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중국(1460건), EU(1360건), 이스라엘(1230건), 우간다(1227건) 순이었고, 한국은 9위(1014건)를 차지했다. 우리의 수출 다변화 대상인 신 남방지역(인도+ASEAN)의 경우 1866건으로 미국, 중국, EU를 앞섰다.

대한상의는 “미·중 무역분쟁이나 보호무역주의의 대두로 우리 기업들은 신흥국 등 수출시장 다변화가 절실하지만, 주요 수출국뿐만 아니라 개도국의 수출장벽마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라며 “건강과 안전 관련 규제가 많았던 만큼 정부가 무역기술규제 대응 지원을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라고 평가했다.

강화하는 무역기술장벽 대부분 디지털ㆍ환경 규제

(자료제공=대한상의)
(자료제공=대한상의)

최근 무역기술장벽의 특징은 디지털·환경 관련 규제 강화, 신흥국 규제 증가, 신규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규제 강화다.

보고서는 EU 사이버 보안법(2019년), 미국의 연방 정보보안관리법(2014년), 중국의 네트워크 안전법(2017년) 시행 등 디지털·환경 관련 무역기술규제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EU의 에코디자인 규정은 에너지효율뿐 아니라 상품의 내구성·재생 가능성을 평가하는 요건까지 더해질 예정이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사용확대 규정 등의 기술규제가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신흥국의 TBT 건수 확대 현상도 최근 특징으로 꼽았다. 2017년 저개발국의 TBT 신규 통보 건수는 이미 선진국을 넘어섰다. 자국의 산업육성과 소비자 안전 보호 측면에서 무역기술장벽을 활용하고 있다.

신규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무역기술장벽이 강화되고 있는 점도 언급했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선 우리가 기존 FTA에서 포함하지 않았던 기술기준이 마련됐다.

주류는 제품표기에 대한 라벨링, 부착방식 등이 정해졌고, 화장품은 동물시험이 금지되거나 시판허가절차가 없어졌다. 정보통신 분야는 특정 암호 및 알고리즘 요구를 금지하는 등 CPTPP 가입을 위해서는 무역기술규제 대비가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정부가 국제표준 선도해야…기업들의 대응역량 확보도 중요”

강화하는 무역기술장벽에 따라 대응역량 확보는 기업들의 과제로 남았다.

보고서는 대응 방법으로 △TBT 신속 대응(통보문 안내 WTO e-Ping, 국표원 KnowTBT 활용) △TBT 컨설팅 및 규제대응 정부 지원 활용 △정부 기술협력사업 적극 참여 △기술규제 대응 전문인력 확보 △ESG 경영을 통한 글로벌 추세 변화 대비 등을 제시했다.

아울러 정부 정책과제로 국제표준화 과정에 참여해 국제표준을 선도하고, 시장 다변화에 대비해 개도국과의 기술표준 협력 강화를 제시했다. TBT 피해 수준, 중소기업 지원 등 정부 대응 성과를 수치화하여 대응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메가 FTA 타결로 관세는 계속 낮아지지만, 비관세장벽은 늘어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무역기술규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출장벽”이라며, “보호무역주의가 늘어나는 지금 TBT 극복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수출 회복의 필수조건인 만큼 TBT 대응을 위한 정부와 기업의 협력이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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