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능력주의의 낙원

입력 2021-03-2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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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부 김유진 기자

수년 전 금융권을 강타했던 채용 비리 사태의 그림자가 여전하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에서 채용 비리 가담자의 승진 인사 조치가 이뤄지면서 금감원은 다시 채용 비리로 인한 내홍을 겪고 있다. 징계에 따른 불이익 부과 기간이 지났고 인사평가 결과에 따른 승진 조치라는 원의 주장과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부여한 것이라는 노조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능력주의 아래에서는 이번 인사의 문제는 없다. 능력주의에서는 성과가 있는 곳에 보상이 있는 것이 당연한 계산법이다. 누구나 자신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평가받고, 그 성과에 따라 사회적 상승이 결정되기 때문에 인사평가의 점수가 높아 승진을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 능력주의가 금감원의 영(令)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금감원 내부에선 이번 인사가 과거 은행권 채용비리에 철퇴를 내리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금융권 임원들이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임기를 연장하려고 할 때 금감원의 발언권이 없을 것이란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 노조는 “작년 이맘때 신한지주 조용병 회장은 채용 비리로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받았지만 연임에 성공했고 하나은행 함영주 부회장도 조만간 채용 비리에 대한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라며 “만약, 이들이 채용 비리 범죄에 대한 유죄를 선고받고도 실적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계속 임기를 연장하려고 한다면 금감원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능력주의는 분명 구성원의 사회적 상승을 위한 노력을 이끌어내며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금감원이 금융시장의 파수꾼과 감시자 역할을 하기 위해선 내로남불식 능력주의가 정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부에 적용한 능력주의 잣대를 금융시장에도 적용할 때 과연 시장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금감원은 금융사의 건전성 확보와 금융시장의 질서 확립,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곳이다. 금감원이 일부 능력있는 자들만을 위한 낙원으로 자리잡지 않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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