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놀이터] 지금 화성에는

입력 2021-03-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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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과학칼럼니스트

해가 지고 한 시간 가량 뒤, 동쪽 하늘 수평선 위로 천천히 떠오르는 붉은 별이 있다. 화성이다. SF영화 속에서 유난히 큰 머리와 눈동자 없는 두 눈이 낯설고 위협적이었던 외계인이 삐리~빠빠~뽀뽀~ 수신어를 보내던 그 별이다.

지난 2월 19일 탐사선 퍼시비어런스(Perseverance) 로버가 이 화성 표면에 무사히 안착했다. 1965년 미국 화성 탐사선 ‘마리너 4호’를 시작으로 인류가 본격적으로 화성 탐사에 돌입한 이래 지금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화성 탐사가 이뤄졌지만, 탐사선이 화성 지표면에 성공적으로 착륙한 사례는 이번을 포함해 여덟 번에 불과하다. 또 한 번의 지표면 착륙 성공만큼 우리의 관심을 모았던 건 로버가 전송해 온 화성의 바람 소리다. 막상 18초 간의 짧디짧은 이 소리를 들어 보면 지구의 바람 소리와 별반 차이가 없어 이게 왜 흥미로운 건가 싶지만, 1997년 무인 이동 로봇 ‘소저너(Sojourner)’가 처음 화성에 착륙한 이래 24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는 한 번도 제대로 화성의 소리를 들은 사실이 없다는 점을 안다면 이 소리가 조금은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퍼시비어런스에 탑재된 마이크는 화성의 소리를 전달하는 건 물론 무인 로봇의 상태를 가늠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할 것이라고 한다. 말하는 로봇을 움직이는 것과 같으니 화성 탐사도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의 시대로 넘어간 셈이다.

이번 탐사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질 표본을 획득해 고대 생물의 흔적을 발견하는 데 주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다량의 물 유입 흔적이 남아 있는 제제로 분화구(Jezero Crater)가 착륙점으로 선택됐다. 슬라브어로 호수를 의미하는 ‘제제로’란 이름이 암시하듯이 수십 억 년 전에는 호수였던 곳으로 보이는 이 분화구 바닥에는 지금도 점토 광물이 풍부하게 있을 수 있고, 때문에 퇴적물층을 통해 고대에 존재했던 원시 생명체 흔적을 찾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강한 바람과 그로 인한 먼지 폭풍이 외부에서의 접근을 어렵게 하는 걸로 알려진 메마른 땅 화성 어디에 생명이 존재할 만큼의 물이 있기는 한 걸까? 이에 대해 화성 탐사 데이터들은 긍정적인 답을 내놓고 있다.

일례로 2014년에는 화성에서 흐르는 물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2018년도엔 적도 근처 지역 얼음층 1.5㎞ 아래에 지름 20㎞ 크기의 호수가 존재함을 확인했다는 발표도 있었다. 하지만 화성 표면의 평균 기온이 영하 63도 정도임에 미루어 볼 때 이 온도에서도 물이 얼지 않고 흐르거나 고여 있는 게 사실이라면 나트륨 등이 다량 녹아 있는 염수일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여기에 생명체가 살고 있을지에 대해선 많은 과학자들이 회의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만큼 충분한 물이 있을 가능성을 좀 더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연구 보고서도 있다. 지난해 5월 미국 텍사스의 사우스웨스트연구소(SwRI, Southwest Research Institute)와 워싱턴의 대학천문학연구협회(USRA, Universities Space Research Association) 그리고 터키 앙카라 대학교의 공동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화성에는 미생물이 존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수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화성의 기후와 탐사선의 관측 데이터를 바탕으로 화성 대기 모델을 세운 후 염수가 화성의 표면과 그 아래에 안정되게 유지되는 위치 및 시기 그리고 기간을 예측해 본 결과, 염수가 만들어질 수 있는 지역의 넓이는 화성 표면의 40% 이상에 이르지만 형성된 염수가 안정되게, 즉 얼거나 증발하지 않고 액체 상태로 있을 수 있는 기간은 화성 시간으로 불과 14일 정도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선은 과거에 있었을지 모를 생명의 흔적을 찾는 건데, 이는 화성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메마르고 대기에 독성 성분이 가득한 별이었던 건 아니기 때문이다.

탐사 자료들이 암시하는 과거의 화성엔 풍부한 수량의 강과 바다가 있었다. 즉 과거엔 현재의 지구처럼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기본조건을 충족하는 골디락스 행성이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많은 물들은 왜 사라졌고, 어디로 간 걸까? 속된 말로 화성에 물 먹는 하마라도 있는 걸까?

수분과 그에 밀접한 생명체의 존재 여부뿐 아니라 대기 구성의 변화, 화성 지질이나 내부의 모습까지 인류가 이 붉은 별과의 썸을 넘어 그곳에 직접 다녀오기까지는 아직도 알아야 할 게 무척이나 많이 남아 있다. 퍼시비어런스가 화성과의 관계를 조금 더 가깝게 해줄 수 있을지 더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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