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택배와 개인정보

입력 2021-03-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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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를 잘못시켰다. 최근 이사해 새로운 주소가 익숙지 않은 탓이었다. 큰 금액도 아니었고, 책 주문이라 새로 시키면 되겠거니 했다. 작은 실수라 치부하고 잊을 무렵 문자를 받았다.

‘박소은씨 전화인가요?’로 시작하는 문자였다. 오발송된 택배의 운송장을 보고 택배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연락했다는 것. 곱씹어보니 택배 송장만큼 개인정보가 낱낱이 적혀있는 것도 없었다. 이름, 전화번호부터 시작해 주소, 주문한 품목, 심지어 발송인의 개인정보까지 담겨 있다. 배려가 고마웠으나, 택배 하나가 잘못 전달된다면 내 개인정보가 순식간에 퍼질 수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도 같이 들었다.

택배 개인정보 유출은 종종 범죄로 연결됐다. 한 BJ는 방송에서 택배 운송장이 노출,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낸 시청자의 장난 전화에 시달리기도 했다. 부산에서는 택배 운송장 번호를 이용해 택배기사로 위장, 강도 행위를 한 20대 남성이 붙잡히기도 했다. 한 택배 기사가 택배 송장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고 발신자표시제한으로 약 70명에게 전화를 걸어 성희롱한 사건도 있었다.

사실 택배 운송장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년간 관계 당국이 명절 택배 스미싱을 경고해왔고, 운송장 폐기에 대해 모든 언론과 기업들이 당부해왔다. 휴대전화번호가 무작위로 변환된 안심번호 사용을 독려하기도 했다.

실효성이 떨어지는 대책들이다. 안심번호를 사용했다가 택배 기사로부터 ‘안심번호 쓰지 말아 주세요’라는 문자를 받았다. 택배 수령인에게 배송 시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절차가 번거로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분리수거장에는 여전히 운송장이 일부 붙어있는 박스들이 쌓여있다. 이 또한 번거로워서일 것이다. 아세톤을 묻혀 개인정보를 지우고 배출하라는 요구나 문서 파쇄기를 동원하라는 권고 사항이 기껍지는 않은 탓이다.

이런 문제의식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올해 △통신대리점 △오픈마켓 △배달 앱 △택배 △인터넷 광고의 개인정보보호 실태를 조사할 계획이라 밝혔다. 비대면 시대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불안감을 덜겠다는 취지다. 뒤집어 말하자면 수년간 해당 분야의 개인정보 문제가 제기돼왔지만,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제기되지만, 대책이 없으면, 그 책임은 오롯이 개인에 넘어간다. 개인정보위와 당국의 실효성 있는 대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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