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한국 반도체에 비상벨 울리고 있다

입력 2021-03-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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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반도체는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자 경제 버팀목이다. 작년 992억 달러 수출로 전체 수출(5128억 달러)의 19.3%를 차지한, 가장 많이 팔고 부가가치 높은 대표 상품이다. 삼성전자가 앞서고 SK하이닉스가 뒤따르면서 세계 메모리시장 주력인 D램의 70%, 낸드플래시의 4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절대 강자인 한국 반도체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마이크론은 세계 최초로 176단 낸드플래시를 출시했다. 삼성은 아직 128단이 주력이고 176단은 개발 단계다. 그건 시작이었다. 마이크론은 올해 1월 “4세대 10nm(나노미터) D램 양산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또한 세계 처음으로, 삼성은 연내 양산 예정이다. 마이크론은 D램에서 삼성과 SK하이닉스에 이은 세계 3위, 낸드플래시는 5위권 업체다.

충격이다. 최근까지도 삼성과 마이크론의 기술 격차는 2년 정도였는데 단숨에 따라잡힌 것이다. 삼성은 1980년대 반도체사업에 본격 나섰고, 세계 시장을 지배한 일본 기업과 1990년대 이후 생사를 건 ‘치킨게임’을 벌였다.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와 뛰어난 원가·수율(收率) 경쟁력으로 끝내 싸움을 이겨내고 메모리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지금 중첩된 나쁜 상황이 급속도로 전개되고 있다. 마이크론의 추격은 일단(一端)이다. 무엇보다 국제 정세가 한국 반도체를 위기로 내몰고 있다. 그동안 세계 시장 공급망은 ‘반도체 제왕’인 미국 인텔의 시스템반도체, 제조역량에서 최고인 대만 TSMC의 파운드리(위탁생산), 설계와 생산기술의 초(超)격차로 독주해온 삼성의 메모리에 의해 지배돼 왔다.

이 구도가 ‘반도체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대두로 요동치고 있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2월 반도체 등의 공급망을 검토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리고, 반도체 자립과 지원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고 나선 게 대표적이다. 바이든은 손톱만한 칩 하나를 들고 말했다. “못이 없어 말발굽의 편자(horseshoe)가 사라졌고 말을 잃었다. 말이 없어 전쟁에서 지고 왕국은 멸망했다. 반도체는 21세기 편자의 못이다.”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미국의 산업생태계와 국가안보에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반영한다. 이어 시스템반도체에 주력했던 인텔이 200억 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이 시장에 새로 진출하기로 했다. 파운드리 세계 1위는 TSMC, 2위가 삼성이다. 아시아의 반도체 지배력을 미국이 되찾겠다는 바이든의 전략이 구체화한 것이다. 인텔은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IBM, 퀄컴, 애플 등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을 끌어들여 미국의 반도체연합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미국과 기술패권을 놓고 충돌하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崛起)는 더 가속화하고 있다. 2025년까지 자급률을 70%까지 올리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리커창 총리는 이달 초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10년 동안 단 하나의 칼을 갈겠다(十年磨一劍)”고 강조했다. 그 핵심이 반도체다. 유럽연합(EU)도 현재 반도체 생산 점유율 10%를 2030년 20%로 높이기 위해 1345억 유로를 투입한다는 ‘디지털 전환 로드맵’을 내놓았다.

반도체는 이미 전략무기다. 미래 선점을 위한 4차 산업혁명과 맞물린 까닭이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드론, 자율주행차 등이 주도하는 차세대 산업혁명에서 반도체는 절대적 기반이자, 모든 혁신의 필수불가결한 열쇠다. 반도체 내셔널리즘의 배경이다.

일본의 유력 미디어인 닛케이(日本經濟新聞)는 최근 삼성 반도체의 위기를 심층 분석한 시리즈 기사를 실었다. 인재 사냥을 통한 중국의 기술 탈취가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는 현상과 함께, 미국과 일본, 대만, 또 유럽까지 포괄하는 반도체의 반중(反中) 연대에서 삼성이 소외되고 점차 TSMC에 밀리는 상황을 진단했다. 특히 한국 정치가 밀어붙이는 재벌개혁에 휩쓸려 이재용 부회장이 수감된 사태가 경영 불확실성과 리더십 공백의 위험을 키우면서 삼성의 발목이 잡히고 있는 위기에 주목했다.

반도체가 흔들리고 삼성이 뒷걸음질치면 한국 경제의 앞날도 기약하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미 비상벨이 울렸고, 위협은 치명적일 수 있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이 불붙는 상황은 지정학적(地政學的) 안보의 위기이고, 기업 차원을 넘어 나라의 명운이 걸린 엄중한 도전이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과 협력구도 재구축, 투자·기술개발 및 인재 확보, 시장경쟁의 우위를 위한 국가 리더십의 고민이나 위기를 넘길 발전전략의 큰 그림은 어디에서도 안 보인다. 안갯속에 갇혀드는 한국 반도체의 미래가 불안하고 암담해진다. kunny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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