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개발 대해부]①"집값 빨리 잡아야" 투기 부른 '신도시 개발 조급증'

입력 2021-03-31 05:00 수정 2021-03-31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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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1-03-30 18: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확실한 정보를 소수가 독점…투기 성공할 수밖에 없는 구조
섣불리 투자했다 수십년 땅 묶여…정부 나서 관리제도 마련해야

'비밀작전'식 신도시 개발 정책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지금까진 충격요법을 통해 집값 안정 효과를 연출했지만 투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다. 개발 가용지를 체계적이고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신도시 조급증에 시간은 투기꾼 편

그간 정부가 신도시 조성 과정에서 '비밀주의'와 '속도주의'를 강조했던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신도시 건설이 십중팔구 집값 상승기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불붙은 주택시장에 충격을 주려는 욕심에 보안이 필요했다.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조급증에 시달리면서 속도도 강조됐다. 이런 강박은 신도시 대형화로 이어졌다. 신도시를 지을 만한 대형 부지를 단기간에 확보하고 투기까지 억제하려다보니 보안은 더 중요해졌다.

조급증은 되레 신도시 예정지를 투기에 노출시키는 요인이 된다. 기다리다 보면 신도시 건설을 위해 정부가 땅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투기꾼들이 알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도권에서 개발할 수 있는 부지가 줄어들면서 신도시가 지어질 수 있는 땅도 빤해지고 있다. 정부는 보안과 속도를 강조하지만 시간은 투기꾼 편이라는 뜻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는 "정부가 신도시를 단기간에 건설하려는 상황에서 확실한 정보를 소수가 독점하다 보니 투기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30년 걸쳐 완성된 영국ㆍ일본 신도시…토지 소유ㆍ개발권 분리도

외국의 신도시 정책은 이와 다르다. 비밀주의와 속도주의에 얽매이지 않는다. 영국의 신도시 '밀턴 케인스'는 1967년 도시계획이 나오고 2000년 완성되기까지 33년이 걸렸다. 지금도 스마트시티를 지향하기 위해 조금씩 확장하고 있다.

일본 역시 신도시를 개발할 때 인구 증가 속도에 맞춰 신도시를 확장했다. 이런 구조에선 신도시 예정지에 섣불리 투기했다간 수십 년 동안 땅이 묶일 수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도 탄탄하다. 프랑스엔 '개발유예구역(ZAD)'이란 제도가 있다. ZAD에선 개발 예정지 안에 있는 토지를 14년 동안 정부가 우선 구매할 수 있다. 구매 가격은 ZAD 구매 1년 전 시장 가격으로 매긴다.

영국은 과거 토지 소유권과 개발권을 분리했다. 현재 땅주인들의 토지 소유권과 이용권을 보장하는 대신 추후에 개발할 권리는 정부가 미리 매수하는 방식이다. 이들 국가는 이 같은 방식을 통해 도시 개발에 필요한 토지를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심 교수는 "외국의 경우 장기간에 걸쳐 주민과 협의해 토지를 매수하는 방식으로 신도시를 조성한다"며 "정보가 공개되면 투기 수요가 발생할 순 있지만 그렇게 되면 그 지역을 포기하고 투기가 덜한 지역에서 사업을 추진하면 된다. 이런 방식에서 투기 세력이 파산한 예도 있다"고 말했다.

▲신규 택지 후보지로 발표된 경기 시흥시 과림동, 광명시 노온사동 일대 (연합뉴스)
▲신규 택지 후보지로 발표된 경기 시흥시 과림동, 광명시 노온사동 일대 (연합뉴스)

있으나마나 토지 비축 제도
개발 가용지,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국에도 개발 가용지를 사전 관리할 수 있는 제도가 없는 건 아니다. 지금도 토지은행제를 통해 공익 목적에 필요한 토지를 사전에 매입, 토지 취득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국토교통부에서 공공토지비축계획을 세우면 LH가 운영하는 토지은행에서 해당 토지를 매입해 사후에 이용하는 제도다.

다만 토지은행 제도는 지금까지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 지난 10년간 매년 2조 원씩 토지를 비축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현실에선 목표치의 10% 남짓밖에 채우지 못했다. 사업 추진 주체인 LH 재정난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정부가 개발 가용한 땅을 투명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개발 가능한 땅을 미리 파악해 놓고 지역 내 거래 상황과 자금 흐름 등을 사전에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면 투기 동향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개발 확정 전 거래 상황과 보상 가격을 소급 적용하고 토지 취득 시점에 따라 보상액을 차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지 보상 전문가인 신태수 지존 대표는 "미리 개발 후보지를 여러 군데 지정해 토지거래허가제(실제 사용 목적을 제외한 토지 거래를 제한하는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며 "면밀한 검토를 거쳐 최종 후보지를 정하면 실수요자 피해는 막으면서도 투기를 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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