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위원회(개인정보위) 산하 개인정보 분쟁조정위원회(분쟁조정위)가 KT와 시민단체 간 분쟁 조정에서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주는 조정 결정을 내렸다. 이용자가 원할 시 개인정보 가명 처리를 정지하도록 주문해 KT가 이를 수용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일 이투데이 취재 결과 분쟁조정위는 지난달 말 신청인과 피신청인인 KT에 조정안을 보냈다. 조정안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신청인에게 기지국 접속정보를 포함한 개인정보 실제 내용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과 향후 신청인의 개인정보 가명 처리를 중지하라는 것.
특히 “개인정보를 가명 정보화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통신 이용자의 손을 들어준 셈이어서 주목된다.
가명 정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암호화한 것이다. 데이터 3법이 통과되면서 기업들은 개인정보를 가명 정보화 해 자유롭게 빅데이터 연구와 마케팅 등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앞서 참여연대ㆍ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ㆍ서울YMCA·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시민단체는 올해 2월 SK텔레콤(SKT)을 상대로 개인정보 가명처리 중지를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참고 기사: 통신사, 개인정보위 분쟁조정위에 촉각>
동시에 KT에는 개인정보위 분쟁조정을 신청했고, LG유플러스에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개인정보침해센터를 통해 신고했다.
민사소송은 진행 중이며, KISA는 “가명처리를 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 있다”면서도 “정확한 판단은 개인정보위의 몫”이라고 했다.
이번에 개인정보 분쟁조정위가 내린 조정안은 KT가 조정 성립일로부터 6주 이내에 신청인에게 기지국 접속 정보를 포함한 개인정보 일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신청인인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감염병 사태 속에서 휴대폰을 쓰지 않아도 근처 기지국에 통신 기록이 남는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그 부분이 부당하다는 문제를 제기했는데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개인정보의 가명처리를 이용자가 원할 시 중지토록 한 것이다. 데이터 3법이 통과하면서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 목적으로 기업이 개인정보를 가명처리 할 수 있게 됐는데 개인이 가명처리 정리를 요구하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분쟁조정위는 판단했다.
신고인과 피신고인인 KT는 조정안을 전달받은 15일 이내에 조정안 수용 여부 결정해야 한다.
KT는 분쟁조정위의 조정안에 관해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없으며, 조정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분쟁조정위가 조정안을 내도 양측이 합의를 거부하면 조정 불성립으로 끝난다.
다만 KT의 수용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사안이 분쟁조정위 전체회의에 상정되면 업계의 제도 개선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비밀유지 의무에 따라 분쟁 조정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면서도 “조정 성립 여부와 무관하게 ‘조정부 회의’에서 해당 사안에 관한 제도 개선 의견이 나오면 분쟁조정위 전체회의에서 논의된 뒤 개인정보위 전체회의로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단은 양측의 조정안 수락 여부를 먼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개인정보위는 분쟁조정위의 조정 결정을 토대로 휴대전화 통화 내역 열람 기한을 1년으로 확대하는 제도 개선을 이뤄냈다. 기존에는 열람 기한이 6개월이었다. 분쟁조정위에서 1년으로 늘리는 조정 결정을 내렸고, 이를 한 이통사가 수용했다. 그 뒤 개인정보위 전체회의에서 이를 단일 사안이 아닌 이동 통신 3사와 알뜰폰 사업자 전체에 적용할 것을 권고했고 사업자들은 받아들였다.
오병일 대표를 포함한 시민단체 측도 이번 조정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오 대표는 “A 씨는 해주고 B 씨는 안 해주는 게 더 이상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이용자에게 적용되는 게 타당하다”며 “통신사 입장에서 가명 정보 처리 중단 요구를 하는 사용자들의 민원을 수리하면 일정 부분 비용이 들 수 있지만, 큰 비용은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분쟁조정위의 결정이 SKT와 민사 소송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