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는 국민의 의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내지만, 소득 또는 사유재산의 강제적 이전이기 때문에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세부담이 너무 커져 생존에 위협을 가할 정도가 된다면 필연적으로 민중의 저항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극적인 예로 영국의 대헌장,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 대혁명 같은 역사적 사건들의 직접적 도화선이 바로 세금 문제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경복궁 중건을 위한 인두세 부과와 일종의 강제 성금인 원납전의 시행이 대원군 실각의 가장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런데 의회민주주의가 확립된 이후에는 이른바 ‘대표없는 과세는 없다’는 원칙이 작동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체제를 변혁시킬 만한 혁명적인 조세저항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만약 광범위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만한 세제개편을 시도하면 그 다음 선거에서 정권교체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이 보수당의 당수직을 내려놓게 된 것(즉, 수상 후보를 사퇴한 것)도 인두세적 요소가 큰 세제개편을 추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증세는 더 이상 혁명의 대상은 아닐지라도 ‘정치적 비인기 품목’이 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 정치적 변혁 또는 선거에 의한 심판이 아닌 주민들의 청원 및 투표에 의해 세부담을 직접 경감시킨 의미 있는 사건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1978년 통과시킨 ‘제안 13(propsition 13)’일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주민발의를 청원의 형태로 제출한 후 주민 일정 수 이상이 이에 찬성하면 제안으로서 주민투표에 회부되며, 그 제안이 유효투표 50% 이상을 획득하면 주 헌법 또는 법률로 확정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1978년 당시 통과된 제안의 내용은 재산세 세율을 최고 1%로 제한하고 재산평가액의 상승률을 매년 2%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물가상승률로 제한하는 것인데, 이는 재산세 부담이 57%가량 줄어드는 직접적 효과가 있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제안의 통과가 감세를 중심으로 하는 1980년대 조세개혁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우리 정부는 최근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의 강화와 공시지가의 현실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세수 확보뿐 아니라 이른바 부동산 투기 방지를 위해 부득이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투기 방지에 보유세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세후수익률을 낮추면 투기수요를 억제할 수 있긴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조세의 전가를 통한 가격인상 효과도 있기 때문에 그 종합적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부동산 투기 방지 내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조세를 포함한 여러 수요억제책과 함께 공급 확대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수요 억제와 세수 확보의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율 인상이나 그와 동일한 효과를 갖는 공시지가 인상은 너무 급격해서는 안 된다. 위에 예로 든 캘리포니아의 경우도 세율과 재산평가액 양자 모두에 제한을 가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와 재산세 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타산지석은 될 수 있다.
사실 재산세가 비교적 왜곡이 적고 지방세로서 적합한 장점이 있는 반면, 과세 기준은 공시지가라는 추정치에 의존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바로 그런 문제 때문에 공시지가는 실제가와 격차가 너무 크지 않은 한도 내에서는 어느 정도 차이를 두는 것이 현실적이다.
세율은 상황에 따라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있는 것이고 공시지가도 올릴 때는 올려야 하지만, 너무 급격한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정부 당국은 현재의 공시지가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거위들이 비명을 지르지는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