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민선정 이노션 팀장 "현실 부부 스토리, 공감의 비결 아닐까요"

입력 2021-04-09 06:00 수정 2021-04-2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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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팀장이 기획한 KCC건설 '문명의 충돌' 편, 국내 4대 광고상 석권ㆍ온라인 호평 이어져

▲이노션, KCC건설 광고 '문명의 충돌'  (출처=KCC건설 유튜브 캡처)
▲이노션, KCC건설 광고 '문명의 충돌' (출처=KCC건설 유튜브 캡처)

“자기야 시간 없어 빨리 가자. 그거 예뻐! 아무거나 입어 똑같아”

“나 안가”

한 부부가 등장하는 영상. 남편이 던진 말에 옷 고르던 아내는 화를 낸다. 아내는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는 남편의 컴퓨터 전원을 꺼버리고, 남편은 주말에 밖에 나가 놀자는 아내를 뿌리친다. 서로 싸우고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 1분 가까이 이어지지만, 영상은 상대를 정의하는 말을 남기며 끝난다.

“그래도 좋은 거 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 “맛있는 거 먹으면 같이 먹고 싶은 사람”

부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은 이 영상은 ‘KCC건설 스위첸’ 광고다. 일반적인 아파트 광고처럼 멋들어진 건물 외관이 등장하거나 소유 가치를 강조하지 않는다. 그 대신 집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람의 삶’을 다룬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대한민국 광고대상ㆍ서울영상광고제ㆍ올해의 광고상ㆍ국민이 선택한 좋은 광고상 등 국내 대표 4개 광고제에서 본상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온라인상의 반응도 뜨겁다. 지난해 7월 유튜브에 게시된 광고는 지금까지 3524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3000개 가까운 댓글도 달렸는데, 광고 영상으로는 이례적일 정도로 높은 관심이다.

‘문명의 충돌’은 현대차그룹의 광고 계열사 이노션이 제작 전 과정을 총괄했다. 이투데이가 '문명의 충돌' 기획을 담당한 민선정 이노션 캠페인본부 기획 7팀장을 5일 만났다.

◇찾아보는 콘텐츠로 소비되는 광고, 의미 커=“실제 생활 속 부부들이 충돌하는 에피소드를 엮어 최대한 현실감을 살리려고 했어요. 광고 같지 않은 '톤 앤 매너(전체적인 콘셉트)'와 부부 못지않은 호흡을 보여준 김남희, 박예니 배우의 생활 연기가 더해져 많은 분이 본인 이야기 같다며 공감해주신 것 같아요”

민 팀장은 ‘문명의 충돌’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은 덕분에 큰 관심을 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너무 광고 같지 않다’라는 이유로 방송 광고 심의 부적합 판정을 받아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되레 이 점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 데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이노션이 담당한 KCC건설 스위첸 캠페인은 아파트를 '사고 싶은 것'보다는 '살고 싶은 곳'으로 바라보고,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가족, 그 안에서 발견한 집의 가치를 화두로 던진다. 2019년 공개된 '엄마의 빈방' 편에서는 사춘기를 맞이해 방문을 닫는 딸과 그 앞을 서성이는 엄마의 모습을 담아 많은 이의 공감을 불러왔다.

지난해 선보인 '문명의 충돌' 편은 부부라는 가족의 형태를 이야기한다. 민 팀장은 “혈연의 가족과 달리 부부는 서로 살아온 환경부터 삶의 방식 등 모든 점이 다른 두 남녀가 만나 가족을 이루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라며 “광고주와 이런 주제로 아이디어를 나누던 중 부부란 마치 거대한 두 문명이 충돌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것이 이번 캠페인의 단초가 됐다”라고 말했다.

파격적인 영상 탓에 어떻게 광고주를 설득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다. '문명의 충돌'은 광고주가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광고사가 이에 대한 기획ㆍ제작 안을 보고하는 일반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광고주와 기획, 제작팀이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 함께 캠페인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새로운 시도를 담을 수 있던 배경이다.

'문명의 충돌' 광고 영상에는 지금도 누리꾼의 호평이 이어진다. '이 광고 만드신 분 상 주세요', '이 광고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었네' 등의 댓글이 많은 공감을 받고 있다. 민 팀장은 '나처럼 찾아와서 광고 보는 사람 많네'라는 평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광고에 이렇게 많은 분이 댓글을 남겨주신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요. 광고가 검색해서 찾아보는 콘텐츠로 소비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습니다. 물론, 솔직한 마음으로 ‘광고 만든 사람들 보너스 줘야 한다’ 이런 댓글도 너무 행복했어요” 민 팀장이 웃으며 말했다.

▲민선정 이노션 팀장  (사진제공=이노션)
▲민선정 이노션 팀장 (사진제공=이노션)

◇현상에 의문 갖고 만든 프로젝트, 가장 기억에 남아=민 팀장은 10년 전 이노션에 합류해 카카오페이지, 현대카드, 대한항공 등의 캠페인을 맡았다. 지금은 KCC건설, 한화그룹, 오늘의 집, 휴테크 캠페인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민 팀장은 현실에서 부딪치는 여러 현상에 끊임없이 의문을 갖는 과정 중에 만들어진 프로젝트가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한화그룹의 ‘태양의 숲’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태양의 숲'은 태양광 에너지로 묘목을 키워 진정한 의미의 탄소 제로 숲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한화는 숲 조성에 필요한 묘목을 키우는 과정에서 이미 탄소가 배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10년 전부터 이 프로젝트를 지속하고 있다. 몽골, 중국 등 사막화 지역과 국내 매립지에 지금까지 5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축구장 180개 규모의 숲을 조성했다.

민 팀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오프라인에서 나무 심는 일이 어려워지자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알파팀과 함께 태양의 숲 게임 앱을 출시했다. 태양의 숲 게임은 이용자가 스마트폰에 햇빛을 비추면 조도 센서가 빛을 인식해 앱에 구현된 태양광 패널 에너지를 채우고 식물을 성장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식물이 자라면 '정원심기' 기능을 통해 캠페인에 기부할 수 있다.

이노션은 사람들이 게임 속에서 나무를 키우면 한화가 실제 나무를 심어주는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서도 손쉽게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경험을 제안한 결과, 많은 참여가 이어졌다. 코로나19라는 변수를 새로운 방식으로 극복한 것이다.

민 팀장은 "1년 동안 태양의 숲 게임에서 기증된 나무는 약 1만800그루에 달한다"라며 "드디어 이달 20일 강원도 삼척에 '탄소 마시는 숲'이 탄생한다. 그야말로 언택트(Un-tact)를 온택트(On-tact)로 이어주는 프로젝트"라고 평가했다.

▲태양의 숲 게임  (사진제공=한화)
▲태양의 숲 게임 (사진제공=한화)

◇콘텐츠, 사람의 마음 움직이는 힘 있어=광고 기획은 끊임없는 고민과 창조가 필요한 작업이다. 영감이 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민 팀장은 '생각의 탐닉'이라고 답했다.

"아이디어를 고민하다 보면 다른 분야,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많이 들여다보게 돼요. 영화나 책, 칼럼도 좋고 SNS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혹은 광고가 아닌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친구들과 대화를 하기도 하죠. 다양한 생각을 가득 채우면, 그 생각의 파편들이 또 다른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더라고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인 만큼 슬럼프가 올 때도 있지만, 그럴 땐 감정이 바닥을 찍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자신만의 방법이라고도 했다.

민 팀장은 "어쩔 수 없이 (타사와) 매번 승부를 겨루다 보니 패배가 쌓이면 슬럼프를 피해가긴 어렵다"라며 "이기기만 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모든 프러포즈가 성공할 수는 없는 일이니 슬럼프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는 편이다. 바닥까지 쳐야 더 훌쩍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민 팀장은 콘텐츠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녀가 광고에 매력을 느끼고,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세상에 좀 더 이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사람들이 공감하고 함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이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사회와 업계에 좋은 영향을 주는 프로젝트로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기획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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