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괜찮아, 편하게 얘기해”

입력 2021-04-08 16:19 수정 2021-04-0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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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림 자본시장부 기자.
▲유혜림 자본시장부 기자.

지난해 모 증권사 PB인 A 씨(20대)는 화장실 가는 것도 참아가면서 일했다. 동학개미 시대에 힘입어 작년 영업장은 계좌개설부터 공모주 청약에 나서는 고객들로 붐볐다.

그래도 즐거웠다고 한다. 내가 일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그런 A 씨가 올해는 작년만큼 신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해당 증권사가 올해부터 개인 실적이 아닌 지점별 성과를 인센티브 기준으로 삼겠다고 하면서다.

A 씨를 비롯한 MZ세대 동료들 중심으로 반발이 거셌다. 기존 성과급제는 내가 일한 만큼 받을 수 있다는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지만, 팀제는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다.

A 씨는 또 한 번 당혹스러웠다. 기준 변경 동의를 위해 회사가 마련한 투표용지와 마주하면서다. 투표용지는 마치 음식점 입구에 놓인 출입 명부와도 같았다.

누가 왔다 갔는지 알 수 있게 한 명부처럼 투표지는 '누가 동의하고 안 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상급자는 "괜찮아, 의식하지 말고 솔직하게 해"라고 말했지만, A 씨는 결코 편할 수 없었다.

이날 익명 사내 커뮤니티에선 지점별 투표 현장을 전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반대하기 힘든 신입사원들부터 들어오라고 하면서 투표를 받네요", "지점장 보는 앞에서 반대 찍으려고 하니깐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네요" 등이 있다.

올해 초 SK하이닉스가 불 지핀 성과급 논란이 증권가로도 번졌다. 일각에선 성과급 논쟁의 촉발점 중 하나가 투명성과 공정성에 민감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와의 소통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단순히 '세대 갈등'으로 치부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땀 흘린 대가에 대해 발언권을 요구하는 근로자들의 목소리로 논의되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는 어제보다 더 나은 근로여건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

참, A 씨 역시 투표용지에 '동의'라고 썼다고 한다. 바뀐 기준에 따르면 상사가 정성 평가하는 내용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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