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ESG 열풍, 쏠림과 과열이 걱정된다

입력 2021-04-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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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ESG 바람이 뜨겁다. 올해 들어와 갑자기 봇물 터지듯 ESG가 최대의 화두로 등장했다. ESG는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의 영어 약칭으로 친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투명한 지배구조로 이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글로벌 투자회사들은 ESG 경영수준을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측정하는 비재무적 지표로 사용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ESG 평가기관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전세계 8500여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ESG 경영현황을 평가해 AAA부터 CCC까지의 등급을 부여한다. 선진국의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는 이런 ESG 등급을 고려하여 투자기업을 선정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금융위원회가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는 ESG 공시를 의무화하도록 하여 기업에 ESG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한국은행은 앞으로 ESG가 부실하다고 평가되는 기업의 채권과 주식을 매입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가령,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ESG 부실기업을 투자대상에서 배제한다는 방침이 민간 금융회사의 자산 운용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것이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같은 글로벌 사모펀드들은 이미 우리나라에서 환경 부문의 전문기업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ESG가 주목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전세계적으로 친환경에 대한 정부 지원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경제활성화 대책으로 그린뉴딜을 추진하며 탄소중립 전환, 미래차 대중화, 환경산업 기술혁신, 환경안전망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미국도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친환경산업 인프라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기차 보급에 약 20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정책을 발표하면서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의 주가가 고공행진하고 있다.

미래 친환경 사업의 성장전망과 금융기관의 투자관행 변화가 맞물려 ESG가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대기업 총수들은 연초부터 ESG경영을 선포했고 ESG위원회를 설치하여 전사적으로 ESG경영을 추진하고 있다. 주총 시즌을 맞이하여 ESG전문가는 사외이사 영입 1순위로 몸값이 높아졌다. 정부까지 나서 중소기업에 ESG경영을 확산하겠다고 한다. 중소기업의 ESG 수준을 진단하여 인증을 부여하고 ESG 인증기업에는 정책자금 융자와 같은 지원사업에서 가점을 준다는 것이다.

이처럼 ESG경영이 인기를 끌면서 ESG에 관한 포럼과 아카데미가 우후죽순처럼 열리고 있다. 심지어 ESG학회까지 새롭게 출범했다. ESG경영을 도입하려는 기업들이 줄을 서면서 컨설팅회사들은 대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처럼 대기업, 중소기업, 금융기관, 정부, 언론, 학계 모두가 뛰어들 정도로 ESG가 새롭고 중요한지 의문이 든다. 기업경영의 목표와 방향을 단기 수익 실적에서 친환경 성장과 사회적 기여로 전환시킨다는 측면에서 ESG경영은 긍정적이다. 다만, 너무 빠르고 너무 뜨겁게 달아올라 걱정이다. 사업이나 투자에 있어서 쏠림과 과열은 항상 급랭과 경착륙의 후유증을 낳는다. ESG 열풍도 쏠림현상과 소외증상을 초래할 것이 우려된다.

우선, ESG로 정부 지원과 민간 자금이 쏠릴 경우에 전통적 분야의 기업들은 사업이 위축되고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ESG 투자 기조가 대세로 자리잡으면 굴뚝 산업의 제조업이나 전통 서비스업은 사양업종으로 소외될 것이다. 최근에, 금융기관들이 ESG 투자관행을 채택하면서 석탄발전소들이 자금 확보에 고전하고 있다고 한다.

ESG를 원칙대로 이행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도 소외될 것이 예상된다. 지금도 시장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에 처한 중소기업은 더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다. 한해 한해 연명하기도 벅찬 중소기업에 ESG까지 잘하라고 하는 것은 과한 요구다. ESG를 내세워 제조 중소기업에 화관법이나 화평법과 같은 친환경 규제를 들이밀면 중소기업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될 것이다.

ESG경영의 추진에 소요되는 비용을 누가 부담하게 될 것인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전경련이 500대 기업 대상으로 ESG 준비실태를 조사한 결과, ESG 추진에 추가비용이 드는 것이 문제로 꼽혔다. 이런 비용이 자칫 제품의 판매가격에 반영되어 소비자 가격을 상승하거나 협력 중소기업에 전가되어 납품단가 인하 압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ESG가 중요하기는 해도 전부는 아니다. ESG라는 그릇으로 기업경영에 관련된 경제적 이해와 사회적 이슈를 다 담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납품회사와의 상생협력은 ESG 어디에 속하는지 애매하다. 한때 유행한 오픈이노베이션을 지금은 누구도 거론하지 않는다. ESG의 본질은 기업의 경제적 역할과 사회적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에 있다. 책임있는 경영, 그게 바로 ESG 경영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 ESG 지표와 평가에만 사로잡히면 오히려 본질적인 책임을 소홀히 할 수 있다. 자칫하면 본말이 전도되어 책임은 뒷전이고 등급에만 매달리는 꼴이 된다. 학생이 실력을 키우지 않고 속성과외로 요령있게 공부해 시험점수만 잘 받는 것과 같다.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법적 처벌을 받은 기업 총수가 ESG경영에 앞장서는 모습은 왠지 어색하다. 기존의 법과 제도를 잘 지키고 원칙대로 경영하면 저절로 ESG 경영이 이루어져야 한다. 복잡하고 어려워 특별히 컨설팅을 받고 전문가에게 배워야 하는 ESG 경영이 시대정신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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