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원호의 세계경제] 21세기 ‘말편자의 못’, 반도체

입력 2021-04-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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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못 하나가 없어서 말편자를 잃었네. 말편자가 없어서 말을 잃었네. 말이 없어서 기사를 못 보냈네. 기사를 못 보내서 전투에 패했네. 전투에 패해서 왕국을 잃었네. 못 하나가 없어서 전부 다 잃었네.” 2월 24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조그만 반도체를 들고 나온 바이든 대통령은 이 영국의 속담이자 동요를 언급하며 21세기 말편자의 못은 바로 반도체라고 말했다. 이날은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4개 품목의 글로벌 공급망 검토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날이다.

대통령령 ‘America’s Supply Chain’에 따라 이날부터 100일 이내에 미국은 위 4개 분야 공급망의 위험을 파악하고, 그 위험에 대한 대응책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이 조치의 직접적 배경은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의 의료 종사자용 개인 보호장비 공급 부족과 최근의 차량용 반도체 칩 공급 부족으로 인한 자동차 산업계의 타격이다.

최근 미국의 조사기관 AFS(Auto Forecast Solutions)는 3월 중순까지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전세계적으로 약 100만대 자동차 감산이 일어났고, 미국은 약 35만대 생산 손실이 있었다고 집계했다. 자동차 생산 차질은 고용문제, 가구 소득문제 그리고 소비문제로 이어진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어려워진 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형국이다.

미국 기업이 세계 반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7% 정도 된다. 그러나 생산 측면에서는 세계 점유율이 11.6%에 불과하다. 즉, 대부분의 미국 기업이 TSMC, 삼성과 같은 국외 기업에 반도체 제조를 위탁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 조사에 의하면 2000년 세계 반도체 생산의 19.3%를 담당했던 미국은 2020년 11.6%까지 점유율이 떨어졌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이 글로벌 반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에서 14.7%까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중국도 반도체 제조에 강점을 보인다고 말할 수 없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는 구세대 반도체에 집중되어 있으며 중국은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약점이 있다. 중국의 유력 경제 전문 잡지 차이징(財經)은 중국 반도체 산업의 첨단 장비와 핵심 부품의 해외의존을 지적한다. 기존 산업에 필요한 부품이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고 자부해 온 중국이지만, 하이테크 제품에 사용되는 첨단 부품과 설비는 치명적인 약점인 것이다.

작년부터 중국은 미국 반도체 제재의 영향을 실제로 체감하고 있다. 화웨이는 스마트폰 부품 공급사를 대상으로 올해 주문량을 60% 줄일 것을 통보했다고 한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제재로 올해 스마트폰 생산량이 지난해 대비 절반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SMIC는 2021년 투자액을 전년 대비 25% 줄였다. 역시나 미국의 제재로 첨단기술 장비를 사용한 제조설비의 조달이 불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두 가지 상반된 대응책을 병행하고 있다. 첫째는 기술의 자립자강 전략이고, 둘째는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 침투 강화 전략이다. 중국정부는 올해 ‘제14차 5개년 계획’과 ‘2035 중장기 발전전략’에서 과학기술의 자립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기술자립을 통해 미국의 견제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와 동시에 세계 각국과 경제협력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2020년 4월 내부 회의에서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과의 의존 관계를 강화하여 외국이 공급을 중단하는 것에 대한 강도 높은 반격 및 억지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자립 전략에는 기술 탈동조화(tech decoupling) 전략으로,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 연계강화 전략에는 트럼프 정부에서 추진했던 클린네트워크 프로그램이나 이번 행정명령과 같이 공급망에서 중국 관련성 낮추기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를 ‘말편자의 못’에 비유했다면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반도체를 사람의 ‘심장’에 비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시진핑 주석은 2018년 중국 메모리반도체 업체 YMTC의 자회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심장이 약하면 덩치가 아무리 커도 강하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앞으로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 와중에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이 파운드리 최강자 TSMC를 보유한 대만이다. 그러나 필자는 기회는 우리에게 왔다고 생각한다. 대만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일국양제·통일중국’을 외치는 중국의 위협이다. 전 구글 CEO 에릭 슈미트가 이끄는 ‘인공지능에 관한 국가안보위원회(NCSAI)’의 지적에 주목하고 싶다. “중국이 대만에 위협을 주는 상황에서 더이상 반도체를 대만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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