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은 정부의 '2050 탄소 중립' 목표를 어렵지만 가야 할 길로 보면서도, 현재의 위기 요인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기업들은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의 투자 지원과 혁신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탄소 중립은 기후변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온실가스 순 배출(배출량-흡수량)을 ‘0’으로 하겠다는 목표다. EU와 일본이 2050년, 중국은 2060년까지 탄소 중립 실현을 선언했고 미국 역시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서 탄소 중립을 공언한 상태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한 바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에 참여 중인 기업 684개사를 대상으로 ‘2050 탄소 중립에 대한 대응실태와 과제’를 조사해 18일 발표한 결과, 응답 기업(403개사)의 57.3%는 2050 탄소 중립을 ‘어렵지만 가야 할 길’로 평가했다. 반면, ‘현실적으로 탄소 중립은 어렵다’라고 답한 기업도 42.7%나 됐다.
탄소 중립은 피할 수 없는 길이지만, 당장에는 기회보다 위기 요인이 된다고 본 기업이 많았다. 탄소 중립이 기업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경쟁력 약화 위기’(59.3%) 또는 ‘업종 존속 위기’(14.9%)라고 응답한 기업은 74.2%를 차지했다. ‘경쟁력 강화 기회’라고 보는 기업은 25.8%에 그쳤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64.8%는 탄소 중립 정책에 ‘대응 중’(31.0%) 또는 ‘대응계획 중’(33.8%)이라고 답했다. 반면, 35.2%는 ‘대응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탄소 중립 대응에 나선 기업은 그 이유로 규제를 주로 꼽았다. ‘현재의 규제’(39.0%) 또는 ‘규제강화 대비’(21.7%)라고 답한 기업이 60.7%를 차지했다. △ESG 실천(16.9%) △경쟁력 강화(12.5%) △공급망 등의 요구(5.2%) △기후위기 대응 동참(2.9%) 등 적극적인 이유로 대응한다는 기업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응 내용으로는 ‘사업장 내 온실가스 감축 투자’(75.5%)가 대부분이었다. 이외에 △RE100 등 이니셔티브 참여(9.3%) △외부감축 사업 추진(7.6) △탈 탄소 기술개발 참여(7.2%) 등이 뒤를 이었다. RE100은 기업들이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약속하는 캠페인으로 국내에서는 SK, LG화학, 아모레퍼시픽 등이 동참하고 있다.
아직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41.7%가 비용 부담을 이유로 꼽았고, △감축 방법 부재(31.3%) △우선순위에서 밀림(22.2%) 등의 이유도 뒤를 이었다.
기업들은 탄소 중립을 위해 다양한 연구개발(R&D) 과제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응답 기업 24.8%는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생산기술이 가장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공정 가스 대체ㆍ감축 기술(22.5%) △에너지효율 향상 기술(22.2%) △자원순환 기술(17.5%) △탄소 포집ㆍ활용ㆍ저장(CCUS) 기술(13.0%) 순이었다.
탄소 중립을 위해 시급한 정책과제로는 ‘감축 투자 지원’(36.7%)과 ‘탈 탄소 혁신기술 개발’(31.0%)을 요청한 기업이 많았다. ‘재생ㆍ수소에너지 공급 인프라 구축’(15.1%), ‘법제도 합리화’(11.2%), ‘협력 네트워크 구축’(5.0%) 등이 필요하다고 답한 기업도 있었다.
EU와 미국에서 도입을 추진 중인 탄소 국경세가 시행되면 73.7%의 기업이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탄소 국경세는 온실가스 배출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한 상품을 규제가 강한 국가로 수출할 때 탄소 비용만큼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김녹영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센터장은 “이번 조사결과 우리 기업들은 2050 탄소 중립을 불가피한 과제로 인식하면서도 현실적인 탄소 감축의 어려움과 기업경영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라면서 “탄소 중립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길은 신재생에너지의 안정적 공급과 탈 탄소 혁신기술에 있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R&D 지원과 함께 산업계와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