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 2인자 낙인론] 짧은 임기에 '단기 성과' 집착…관치 우려에 당국도 손놔

입력 2021-04-19 10:00 수정 2021-04-1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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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당국 개입근거도 애매 '피해는 결국 고객 몫'…금융당국과 소통 부족까지 겹쳐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은행장은 초조하다. 현재 이상의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짐을 싸야 하는 신세다. 성과에 눈이 먼 행장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금융 상품에 눈을 돌린다. 짧은 임기 내에 성과를 올려야 연임을 통해 ‘뱅커’로서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초단기 인사는 행장이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결국 피해는 해당 상품을 구매한 고객의 몫이다.

◇짧은 임기에 실적 급급…결국 피해는 소비자 몫=이 같은 단기 인사 방식은 CEO들이 단기 성과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원인이다. 예대 금리(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의 차이)만으로는 수익을 올리기 한계가 있으니 펀드 판매 등 비이자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현재 (행장이)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 개인 성과 지표(KPI)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직원들은 할당을 채우기 위해 무리한 영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지주회사 회장들은 3, 4연임 하는데 행장은 겨우 2년하고 연임이 안 되니 실적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금감원도 행장의 짧은 임기가 가져오는 문제점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지주ㆍ은행에 종합검사를 나가지 않으면 이 같은 실태를 제때 지적하기 힘든 실정이다. 금융사 CEO 임기가 단순히 1년이라고 해서 시정 조치를 내릴 순 없기 때문이다. 종합검사로 전반적인 경영 구조를 살핀 후 행장의 초단기 임기에 따른 성과주의로 치우쳤다는 것이 확인됐을 때만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통상 종합검사는 2~3년 주기로 이뤄져 금융사의 이 같은 성과주의를 잡아내기엔 시차가 존재한다는 한계가 있다.

최근 들어 금감원이 금융사 최고경영진(CEO)의 짧은 임기를 지적한 건 농협금융지주뿐이다. 지난해 5월 금융감독원은 NH농협금융그룹이 자회사 CEO의 임기를 1년밖에 보장하지 않는다며 자회사 지배구조와 관련한 경영 유의 조치를 내렸다. 금감원은 농협금융의 지배구조 내부규범과 정관에 의해 자회사 CEO의 첫 임기를 2년 이내로 정할 수 있는데 이를 1년만 부여한 것을 문제삼았다. 실제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자회사인 NH농협은행과 NH농협생명보험, NH농협손해보험, NH농협저축은행, NH농협캐피탈 등 5개 자회사의 CEO의 임기를 1년으로 통보했다.

우리 당국만 갖는 문제의식이 아니다. 해외에서 봤을 때도 한국 금융지주 지배구조는 비정상적이다. 글로벌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미국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는 최근 신한금융과 우리금융 이사 재선임 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ISS는 한국 4대 금융지주에 대한 ‘주주총회 의안 분석’ 보고서를 통해 신한금융과 우리금융의 이사 연임에 대부분 반대 권고 의견을 냈다. 기존 이사들이 현 최고경영진(CEO)을 제대로 견제·감시하지 못해 지배구조의 위험을 키웠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진옥동 행장에 대해서는 라임 사태 등에 대한 제재뿐만 아니라 조용병 회장에 대한 견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ISS는 진 행장에 대해 “지난해 채용 비리에 연루돼 유죄판결을 받은 조용병 회장에 대해서도 연임을 허용했다”면서 “당시 진 행장의 무반응은 지배구조와 위험 관리에 대한 중대한 실패”라고 지적했다.

◇관치 논란 의식한 소통 부재도 ‘문제점’= 금감원 임원들은 은행장들의 연임에 실패에 제도 개선의 미흡한 부문을 지적한다. 금융지주 경영진들을 견제할 만한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했고, 소통도 부재했던 데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다. 이같은 현상은 금융감독 당국의 한계점이 여실히 나타난다. 금융당국의 견제도 사실상 힘을 잃은 것이다.

그럼에도 금감원이 미안한 마음만 간접적으로 표한 건 ‘관치’로 비칠까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금융지주 이사회와의 소통은 필요한데, 그간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치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 2018년 8월 윤석헌 원장은 취임 후 직접 7개(KB·신한·하나·NH·BNK·DGB·JB) 지주 이사회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정례화를 약속했지만 흐지부지된 바 있다. 관치 금융 논란을 의식한 탓이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금융지주와 적절한 소통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 년에 한 번 나가기 힘든 종합검사보단 금융지주의 현안사항, 리스크요인, 애로사항, 내부통제 정보·경험 등을 상시로 공유해 개선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마침 최근 금감원은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 간담회를 재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진행할 간담회에서도 이사회의 역할론에 대해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KB를 제외한 금융지주사들은 현 회장 이후의 후계자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있다. 체계적인 후계자 양성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얘기”라며 “지배구조법개정, 감독당국에 대한 신뢰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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