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패소한 일본으로부터 소송 비용을 추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양호 부장판사)는 지난달 29일 내린 ‘국고의 상대방에 대한 추심’ 결정에서 “국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납입을 유예하도록 한 소송비용 중 일본으로부터 추심할 수 있는 비용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소송구조 제도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위해 법원이 소송 비용 납부를 유예시키는 제도다. 지난 1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재판부는 “원고 1인당 1억 원과 지연이자, 소송비용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한 바 있다. 이후 일본이 소송에 대응하지 않으면서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법원은 패소한 당사자가 소송비용을 부담한다는 민사소송법상 원칙을 근거로 일본이 피해자들의 소송비용까지 모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같은 경우 법원은 일반적으로 국고의 상대방에 대한 추심을 결정해 유예한 소송 비용을 피고로부터 추심하는 절차를 개시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일본으로부터 소송비용을 추심할 경우 국제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추심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 그동안 체결된 이른바 한일청구권협정, 위안부 합의 등 각종 조약과 합의, 각국 당국이 이 사건과 관련해서 한 언동에 국제법상의 금반언(이전 언행과 모순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원칙을 더해보면 추심결정을 인용하는 것은 비엔나 협약 27조 등 국제법을 위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비엔나 협약 27조에 따라 국내적 사정과 해석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합의 등) 조약의 효력은 유지될 수 있다"며 "이 같은 경우 판결 집행 자체가 권리남용에 해당해 청구이의의 소송이나 잠정 처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사정에까지 이르면 현대 문명국가들 사이 국가적 위신과 관련되고 우리 사법부의 신뢰를 저해하는 등 중대한 결과에 이르게 되며 헌법상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와도 상충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결정은 앞서 김정곤 부장판사가 재판장이었던 올해 1월 본안 판결과 상충한다. 당시 재판부는 일본의 국가면제(주권면제)를 인정할 수 없다며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한편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등이 제기한 2차 소송 선고는 21일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