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수급난 해결을 위해 당장 미국이 필요로 하는 반도체 투자 등의 카드를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투자 등을 약속하고 미국에 있는 백신을 미리 빌려 쓰는 이른바 '한미 백신 스와프' 시나리오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백신의 해외 공유에 소극적인 태도를 내비치면서, 반도체 협상 카드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정부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을 시작으로 불거진 글로벌 반도체 대란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2일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 경영진과 백악관 화상회의를 갖고 "반도체 투자가 미국 일자리 계획의 핵심"이라며 미국 내 투자를 강조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애리조나주, 뉴욕 등을 후보지로 현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신공장 건설 계획을 갖고 있다. 마침 다음 달 한ㆍ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상황이기도 하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패권을 강조한 만큼 삼성이 미국에 적극적인 투자를 약속하고 반대급부로 백신 조기 공급을 약속받는 게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과 재계에서도 이재용 부회장 사면론이 부상하고 있다.
김근식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은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5월 한ㆍ미 정상회담 때 이 부회장을 임시로 석방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미국으로 가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코로나 사태 등 전 지구적 재난 상황을 고려하면 기업인들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고(故) 이건희 회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던 것처럼 이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도 "이 부회장의 인적 네트워크로 백신 확보에 힘을 보태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는 정평이 나 있다. 삼성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바이오, 배터리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다 보니, 이 부회장은 해당 분야 글로벌 기업 CEO(최고 경영자)들과 친분이 돈독하다.
또 이재용 부회장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모디 인도 총리,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나흐안 아랍에미리트 왕세제 등과도 가까운 사이다.
이 부회장은 2019년 일본 정부의 반도체ㆍ디스플레이 핵심소재 수출규제 사태 당시에도 일본 정ㆍ재계의 인맥을 통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초반 마스크 필터용 부직포가 부족할 때 정부 요청을 받은 삼성전자가 나서면서 반년 이상 걸릴 원료 수입을 한 달 만에 해결한 적이 있다"며 "국가 비상시국인 만큼, 기업인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