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베일벗은 ‘이건희 컬렉션’ 살펴보니

입력 2021-04-28 17:38 수정 2021-04-29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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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들이 이 회장이 평생 수집한 개인소장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국립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한다고 발표했다.

겸재 정선 ‘인왕제색도’(국보 216호)·단원 김홍도 ‘주성부도추성부도’(보물 1393호) 등 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보물 46건)을 비롯해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이중섭 ‘황소’ 등 근대 미술품 160여 점, 모네·살바도르 달리·샤갈·피카소 등 유명 서양화가의 미술작품도 상당수 포함됐다.

미술계에서는 해당 작품들의 감정가를 2조5000억 원~3조 원, 시가로는 10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회장이 보유했던 대부분 미술품을 기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측은 “지정문화재를 비롯해 고미술품·예술작품 등이 이번과 같이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기부를 결정한 고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중 의미가 있는 일부 작품을 살펴봤다.

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1962, 캔버스에 유채, 130×89㎝)

박수근은 독특한 화풍으로 소박한 서민의 모습을 그려 1950~1960년대의 시대상을 화폭에 담았던 화가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 신조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는 그림 속에서도 드러난다.

화강암 표면을 연상케 하는 박수근의 전형적인 기법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서민의 삶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 박수근의 마음이 느껴지는 수작이다.

겸재 정선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1751, 지본수묵, 79.2×138.2㎝)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謙齋) 정선(1676∼1759)이 그린 인왕산의 진경산수(眞景山水). 1984년 8월 6일 국보 제216호로 지정되었다. 한여름 소나기가 지나간 뒤 삼청동(三淸洞)·청운동(淸雲洞)·궁정동(宮井洞) 쪽에서 바라본 인왕산 바위의 인상을 그린 것으로, 일기변화에 대한 감각표출과 실경의 인상적인 순간포착에 그의 천재성이 충분히 발휘된 그림이다.

그의 나이 75세에 그린 그림으로 화면을 압도하는 인왕산 바위의 대담한 배치와 산 아래 낮게 깔린 구름, 농묵(濃墨)의 수목이 배치된 짜임새 있는 구도는 현대적인 감각도 풍긴다.

오지호 ‘사과밭’(林檎園, 1937, 캔버스에 유채, 71.3×89.3㎝)

모후산인(母后山人) 오지호(1905~1982)는 전라남도 화순 출신으로, 당시 일본 유학생들을 통해 들여오던 일본식 인상주의 화풍에서 벗어나 한국의 기후와 자연에 걸맞은 새로운 인상주의를 실현한 작가다. 이 작품은 오지호가 당시 한국적 인상주의라는 개념을 어떻게 모색했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1930년대에 제작된 오지호의 작품은 원작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자료로서도 귀중한 의미를 지닌다. 오지호는 5월의 사과밭으로 가서 직접 현장을 사생하며 3일에 걸쳐 이 작품을 그렸다고 알려졌으며, 봄의 신선함을 표현한 수작으로 꼽힌다.

고려 불화 ‘천수관음보살도’(千手觀音菩薩圖, 탱화, 93.8×51.2㎝)

1000개의 손과 그 손마다 눈이 달려 있는 보살의 모습을 한 천수관음보살(千手觀音菩薩)을 그린 고려시대 불화이다. 보물 제2015호이다.

천수관음 도안은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의 자비력을 손과 눈으로 형상화하여 강조했다. ‘천수관음’은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 또는 ‘대비관음(大悲觀音)’이라고도 불리는 관음보살이다. 천수관음은 11면의 얼굴을 가지고 있고, 40~42개의 큰 손에 눈이 그려져 있으며, 각기 손에는 다른 지물(持物)을 쥐고 있다.

화면이 변색이 심하게 일어난 상태이긴 하나 본래의 모습은 매우 화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불화 중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천수관음보살도일 뿐 아니라 다채로운 채색과 금니(金泥)가 조화롭게 화면을 꾸민 수작이다.

김환기 ‘작품 19-Ⅷ-72 #229’(1972, 캔버스에 유채, 264×209㎝)

교단에서 후학을 지도하던 김환기는 1963년 뉴욕으로 이주한 이후 새로운 추상의 세계를 펼친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면서 그의 작업은 점을 이용한 추상실험의 비중이 높아졌고, 1970년대부터는 전적으로 점묘화에 집중되기 시작한다. 아울러 캔버스의 크기가 거대해지고 주고 청색 한 가지만을 사용하면서 화면 전체의 균일한 크기의 점으로 채우는 전면적인 구성이 자리를 잡는다.

‘작품 19-Ⅷ-72 #229’는 김환기가 1972년을 전후해 시도한 점묘화의 구성 변화를 보여준다. 그는 점묘화 초기의 단조로운 수평 배치를 벗어나 방향을 달리하여 역동성을 주거나 파동을 연상케하는 동심원 배치를 사용하기도 하고, 물감의 농담을 달리해 색의 변조를 주는 등 하나의 점에서 출발해 화면에 다양한 변화를 줬다.

이인성 ‘해당화’(1944, 캔버스에 유채, 228.5×146㎝)

이인성은 한국 근대미술에 있어서 ‘향토성’ 논의를 촉발하는 작가이다. 이인성은 화가로서의 입신양명을 위해 조선 총독부가 주최했던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등단한 화가였다. 그의 그림은 척박하고 음울하기 그지없던 식민지 조선의 맨살을 그대로 드러냈지만, 딸의 이름을 ‘애향(愛鄕)’으로 지을 만큼 자신의 고향과 조국을 진정한 마음으로 사랑했다.

1944년에 그린 ‘해당화’는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식민지기 화가로서의 회한과 고독의 정조가 고스란히 담긴 한국 근대회화의 걸작품이다.

이중섭 ‘황소’(1953~1954, 종이에 유채물감, 32.3×49.5㎝)

이중섭(1916~1956)은 서양화가 임용련으로부터 진보적인 미술지도를 받았다. 1938년 ‘자유미술가협회’ 공모전에서 협회상을 받아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1941년 문학수·이쾌대 등과 함께 ‘조선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해 민족적 미의식 실현을 도모했다.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분출하듯 고개를 휘저어 올린 소의 움직임을 포착한 이 그림은 이중섭의 탁월한 표현력을 담아낸 대표작이다. ‘소’는 이중섭의 자화상인 동시에 한민족의 표상으로까지 인식된다. 이 그림에서 화가는 강렬한 황색과 붉은색의 뼈대 있는 필선, 필획을 이용해 소에 대한 강한 인상과 감동을 빚어내고 있다.

르누아르 ‘책 읽는 여인’(1890, 44×55㎝)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 중 한 명으로, 빛과 색채를 조합하여 일상의 풍경과 여성, 아이들을 주로 그렸다.

1890년에 제작한 ‘책 읽는 여인’은 르누아르가 즐겨 그린 소재인 독서를 하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화면에는 작가 특유의 부드러운 붓 자국과 화사한 색채감이 드러나며 자연광의 색감을 눈에 보이는 대로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밝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여인의 모습에서 “그림은 즐겁고 유쾌하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라는 르누아르의 예술관이 드러난다.

고갱 ‘무제’(Untitled, 1875, 114.5×157.5㎝)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 중 한 명이다. 그는 파리에서 증권거래원으로 일하던 중 일요일마다 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공부하다가 인상파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1880년대 중반부터는 인상주의 화풍에서 벗어나 현실과 상상을 접목한 종합주의를 창안했다. 그의 작품은 원주민의 천진함과 열대의 밝고 강렬한 색채를 특징으로 하며, 그 안에 표현된 상징성과 비(非)자연주의적 경향이 야수주의, 독일 표현주의 등 20세기 현대 회화가 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제’는 고갱이 전업 화가로 활동하기 전, 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우던 시기에 제작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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