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4년째 제자리인 국정과제, 체불임금 대책

입력 2021-04-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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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22세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불꽃이 된 지 40년이 지났고, 근로자의 날(노동절)이 3월 10일에서 세계 노동절인 5월 1일(메이데이)로 날짜를 바꾼 지도 27년이 흘렀다. 근로자의 날은 노동자의 권익과 복지를 향상하고 안정된 삶을 도모하기 위하여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명칭을 바꾸자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는데, 국가가 단지 일 년 중 하루를 휴일로 보장하는 것 이상으로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한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임금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이며, 노동자 및 가족의 생계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게 하는 가장 기초적인 재원이다. 하지만 이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임금 체불 피해 노동자 수가 매년 40만 명 이상이며 그 액수는 2020년 기준 1조6393억 원에 이르고 있다. 이에 더해 근로감독을 받지 않은 사건까지 고려한다면 임금 체불 피해 규모는 훨씬 클 것이다. 2014년 기준이긴 하지만 한국의 임금 체불액은 일본의 9~10배, 임금 체불 피해 노동자 수는 7~8배라는 연구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임금 체불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이에 대한 국가적 책임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임금 체불로 생계가 막막한 노동자를 긴급히 구제하고, 사업자의 상습적인 임금 체불이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현 정부는 2017년 7월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서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해 ‘체불근로자 생계보호 강화 및 체불사업주 제재 강화’를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예산과 제도의 한계 속에서 지난 4년 동안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먼저 체불근로자 생계보호 강화를 위해 ‘임금채권보장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정부 예산이 부족하고 절차가 복잡해 실질적인 지원이 되지 못하고 있다. 임금채권보장제도는 퇴직한 근로자가 기업의 도산 등으로 인하여 임금 등을 지급받지 못한 경우 사업주를 대신하여 일정 범위의 체불임금 등을 지급(체당금)하는 제도로 1998년에 도입됐다. 지급 요건에 따라 도산 시 청구하는 ‘일반체당금’과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에 청구하는 ‘소액체당금’으로 나뉜다. 최종 3개월분 임금, 최종 3년분 퇴직금 지급 범위 내에서 일반체당금은 월(1년 퇴직금) 220만~350만 원이 상한액이며, ‘소액체당금’은 임금, 퇴직금 각 700만원, 합계 1000만원 한도로 지급한다.

2021년 정부는 전체 13만5000여 명 기준으로 체당금 예산 6698억 원을 편성했다. 세부내역을 보면 ‘일반체당금’ 1만여 명 대상 794억 원, ‘소액체당금’ 10만4000여 명 대상 4813억 원, ‘코로나19 관련’ 2만1000여 명 대상 1092억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2019년 기준 전체 체불근로자는 34만5000여 명인데, 2011년 체당금 예산 대상이 13만5000여 명이라면, 40% 정도의 근로자만이 정부 지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현재 소액체당금을 지급받기 위해서는 법원의 확정판결 등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체불 신고를 하고 체당금을 지급받을 때까지 평균 7개월 이상이 걸린다. 이런 제도적 허점 때문에 당장 생계에 쫓기는 근로자가 소액체당금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조금이라도 일찍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실제 체불액보다 훨씬 낮은 금액으로 사업주와 합의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포기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체불사업주 제재 강화 대책도 마찬가지다. 현재 노동 관계법 위반 범죄 중 임금 체불은 유일하게 ‘반의사 불벌죄’에 해당된다. 근로기준법 제109조 제2항 ‘반의사 불벌’ 조항에 의거하여 체불 신고 처리과정에서 체불임금을 지급하거나 노동자가 고소를 취하하면 사업주는 임금 체불에 대한 어떠한 법적 처벌도 받지 않는다. 근로자 보호가 아니라 고의적이고 상습적인 임금 체불을 방조하는 셈이다.

국정과제라는 ‘체불근로자 생계보호 강화 및 체불사업주 제재 강화’는 말뿐으로 끝날 것인가? 지난 3월 ‘임금채권보장법’이 개정되었지만 체불근로자의 생계를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여전히 일반체당금은 지급요건이 너무 까다롭고, 소액체당금을 받을 수 있는 재직자는 중위소득 50% 미만 근로자로 한정된다. 또한 상습 체불에 대한 제재보다는 근로감독관이 사업자와 근로자 간 합의를 유도하는 ‘지도해결’에 그쳐 체불을 예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중소규모 사업장의 경영악화로 임금 체불이 증가하고 있다. 소상공인 손실 보상 못지않게 정부의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체당금 지급 절차를 간소화하고 신속히 지급해야 한다. 동시에 지급 한도와 대상도 더 확대해야 한다. 또한 반의사 불벌죄 조항을 폐지하고 고의적이고 상습적인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해서는 처벌조항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여 근로기준법의 규범력을 높여야 한다.

근로자의 최우선 권익이자 복지는 ‘임금’이다. ‘임금 체불’이야말로 근로기준법을 40여년 전 전태일 시대로 되돌리는 것이다. 코로나19 시기 노동절을 기념하고 휴식을 위한 ‘하루’도 중요하지만 생계를 위한 ‘매달’ 임금이 중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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