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기획] 박정임 매니저 “모든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금융환경 만들 것”

입력 2021-05-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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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임 메리츠자산운용 매니저
▲박정임 메리츠자산운용 매니저

박정임 메리츠자산운용 매니저는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이사의 가치관에 공감하며 함께 일을 시작했다. 특히 메리츠자산운용이 운용업계 최초로 내놓은 ‘메리츠더우먼펀드’에 박 매니저가 운용역을 맡으면서 펀드와 회사의 지향점이 더욱 뚜렷해졌다. 해외 글로벌 투자은행(IB)에서 일하던 그가 한국 자산운용사로 옮겨온 이유는 “최소한 한 명의 삶에 밸류(가치)를 창출하는 금융업을 여기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거만해지지 말자"

박 매니저는 해외 IB에서 글로벌 자산운용사들과 많은 일을 함께했다. 존 리 대표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다. 그는 “그때 다양한 전략을 가진 자산운용사들이 어떤 식으로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지 보고 배울 수 있었다”면서 “어떤 관점에서 투자 기회를 보고, 투자하려는 기업에 어떤 질문을 하고, 얼마나 입체적으로 투자 결정을 내리는 지 오랜 기간 봤다”고 말했다.

그 시간 동안 그의 삶에 가장 영향을 끼친 것은 명망 있는 한 이머징마켓 펀드 운용역의 한 마디다. 박 매니저는 “남의 돈을 다루게 되면 거만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 생각이 들 때쯤 내가 운용하는 돈은 저 개발 도상국의 농부가 평생 노동으로 일해서 모은 걸 나에게 맡겼고, 그들의 노후를 위한 돈임을 상기한다고 했다”면서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자산운용가의 마인드였다”고 전했다. 지금 그의 운용 마인드와 다르지 않다.

그가 이직을 결심할 때는 “너무 편해졌을 때”라고 했다. 2015년 IB 업계를 떠나면서 그는 요리를 배우려고 했다고.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한국에서 존 리 대표를 만났고, 그때 존 리 대표의 ‘펀드 직판 계획’을 들었다. 판매사에 의존하는 현재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는 “여기서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박 매니저는 “판매사에 의존하는 기존 체계는 만들 수 있는 변화가 크지 않지만, 직판은 분명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면서 “내가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SPEAK UP(더 크게 말하다)

그는 금융업계에서 여성으로서 오래 일할 수 있었던 비결은 ‘speak up'이라고 말한다. 내 생각을 회사에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것이다.

박 매니저는 “미셸 윌리엄스의 수상 소감이 기억에 남는다. 미셸은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여성배우가 필요한 걸 말하면 그에 귀 기울이고 믿어라. 그럼 나와 같은 결과를 만들 것’이라는 말을 했다”면서 “여성들은 자신 있게 ‘내가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런 조건이 필요해요’ 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한국 문화에선 ‘speak up’ 하는 게 힘들기 때문에 중간급 임원에 여성이 많이 필요하다”면서 “그들이 여성 직원들의 ‘speak up’을 장려하고 배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직장 내 여성 간의 연대도 중요하다고 봤다. 박 매니저는 “워킹맘들이 아이 학원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게 아니라 서로 백업하고 본인들 스스로 셋업(set up)해서 워킹맘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회사에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그가 운용하는 ‘우먼펀드’는 여성 임원이 많은,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 기업에 투자한다. 그리고 부족하다면 “더 배려하라”고도 말할 수 있는 역할이다. 아직은 소규모 펀드기 때문에 투자자로서 가지는 말의 힘은 약할 수 있다. 그는 펀드 규모가 점차 커지면 중요한 투자자로서 기업에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우먼펀드의 규모가 여성의 힘과 비례하는 이유다.

박 매니저는 “우먼펀드가 투자한 기업들의 지난해 실적을 보면 전부 장사를 잘했다. 위기에서도 성장할 기회를 잡아내고 수익률도 좋아졌다”면서 “결국 우먼펀드의 취지와 맞는 게 여성 임원이 있는 기업들이 유연하게 결정을 했고, 위기 대응능력이 빠르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워킹맘의 워라밸은 직원이 만들고, 회사는 유연성을 줘야 한다. 동료들에게 지장을 주지 않고, 네 일을 다 해내고 싶으면 시간이나 장소의 배분을 스스로 하는 거다”면서 “물론 이를 위해서는 직원이 회사의 유연성을 남용하지 않고, 스스로 오너십을 가지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정임 메리츠자산운용 매니저
▲박정임 메리츠자산운용 매니저

100년 된 자산운용사가 목표

박 매니저의 목표는 회사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그는 “자산가가 아닌 모든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금융을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직판채널을 확대하고, 많은 고객을 직접 찾아가고 있다. 직판채널을 통해 개설된 계좌는 지난해 15만 계좌를 돌파했다.

박 매니저는 “한국 펀드는 운용사가 빠져있고, 판매사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나도 판매하는 곳에서 일했기 때문에 판매사를 존경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투자한 사람과 운용사”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고객의 편의상 판매사가 있지만, 투자자와 운용사의 직접적인 교감이 필요하다”면서 “그 일에 집중하고 있다. 어플이 불편하긴 하지만 최종적으로 투자자와 기업, 운용사 등 모든 관련된 사람의 이해관계를 같은 선상에 두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이를 위해 직원의 보너스를 회사의 주식으로 주는 경우가 많다. 메리츠자산운용사는 상장사가 아니라 주식은 받지 못하지만, 보너스를 회사의 펀드에 투자하도록 했다. 운용역의 부(富)와 고객의 부가 일치하는 것이다. 펀드 수익률을 높여야 할 유인이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보육원 아이들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메리츠자산운용이 나서고 있다.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해 블루베리 참(Charm)을 제작해 판매한 수익금을 기부한 것이다. 박 매니저는 수익금만큼의 돈을 똑같이 기부해 보육원에 기부했다. 단순 기부가 아니라 보육원 여자아이들에게 펀드를 가입시켜 주면서 시드머니를 만들어 준 것이다.

박 매니저는 “자본이 일하는 것, 복리가 일하는 것을 배우면 부유한 삶이 될 수 있다”면서 “작은 규모지만 계속 뭔갈 하고 있다는 게 많이 이룬 거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박 매니저의 목표는 메리츠자산운용사의 운용자금(AUM)이 10조가 되는 게 목표라고 한다. 사실 숫자 10조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만큼 가치관을 오래 지키면서 운용사를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다.

박 매니저는 “고객 수와 운용 자산이 늘어나는 게 사업상으로 가지고 있는 목표지만 고객의 신뢰를 얻는 게 제일 큰 목표”라면서 “직판 3년 동안 한 번도 철학을 벗어난 적이 없다. 이런 신뢰가 쌓이게 되면 미국에 100년 된 자산운용사들처럼 철학을 지키면서 오래가는 운용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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