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가상화폐’ 결국 은행이 거래소 검증 기준 마련

입력 2021-05-02 17:46 수정 2021-05-0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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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미영 기자 win8226@)
(그래픽=신미영 기자 win8226@)

은행연합회, 당국 외면 속 특금법 가이드라인 배포
계좌 발급 여부 결정…4대 거래소, 9월까지 갱신

은행권이 가상화폐 거래소 검증 과정에서 적용할 지침을 마련했다. 정보 보호 관리 체계, 조직 내부 통제 규정, 가상화폐 사업자의 대주주 등을 살피는 것이 골자다. 가상화폐 시장이 커짐에도 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자 은행권이 나서서 자율적으로 준칙을 세운 것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최근 시중은행들에 ‘자금세탁방지(AML) 위험평가 방법론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가이드라인은 은행이 가상화폐 사업자에 대해 평가할 항목으로 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ISMS) 여부,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의무 이행을 위한 조직 내부 통제 체계ㆍ규정ㆍ인력의 적정성, 대주주 인력 구성, 취급하는 자산의 안전성, 재무적 안정성 등을 명시했다. 가이드라인엔 각 점검 사항에 대한 검증 방식도 포함됐다. 은행들은 상황에 따라 복수의 방식을 조합해 적용할 계획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은행연합회와 은행이 외부 컨설팅 용역을 의뢰해 마련됐다. 최근 국내 가상화폐의 하루 거래 금액이 코스피의 수준을 뛰어넘는 등 그 시장이 커졌지만 금융당국이 가상화폐를 제도권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당국이 최소한의 지침도 주지 않자 당사자인 은행이 직접 지침 마련에 나선 것이다. 은행과 제휴한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금융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은행은 책임을 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앞서 3월 개정된 특금법과 시행령은 가상화폐 거래소가 은행으로부터 고객의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입출금계좌를 받아 영업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거래소가 은행에 실명 확인 입출금계좌 발급을 신청하면 은행은 해당 거래소의 위험도, 안전성, 사업 모델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계좌 발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전까진 공통된 평가 지침이 없어 개별 은행들이 알아서 거래소를 검증해야 했다.

은행들이 공통된 검증 지침을 마련하자 가상화폐 업계는 긴장한 모습이다. 심사가 강화되면 100여 개의 중소형 거래소는 물론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국내 4대 거래소도 안심할 상황이 아닌 이유에서다. 4대 거래소는 특금법 유예 기한인 9월까지 거래 은행과 실명계좌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

한 거래소와 실명계좌를 튼 은행은 거래소에 높은 수준의 체계 구축을 요구할 방침이다. 이 은행은 거래소에 고객 확인 매뉴얼ㆍ시스템 구축, 요주 인물 필터링, 거래 모니터링 시스템ㆍ방법론 작성, 의심 거래 보고 체계구축, 자금세탁방지 점검 인원 확충 등을 주문하고 있다.

특금법 유예기간이 끝나면 문 닫는 거래소는 늘어날 전망이다. 은행들이 거래소의 건전성을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데 부담을 느껴서다. 은행으로서는 금융 사고 시 책임을 최대한 면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건전성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일부 중소형 거래소는 현재도 시중은행과 제휴를 맺기 힘들다고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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