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부동산세(종부세)는 대한민국 상위 1%만 내도록 설계한 일종의 ‘부유세(富裕稅)’다. 노무현 정부 시절 종부세가 도입된 후 한때 “나도 종부세 한번 내봤으면 좋겠다”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유행했다. 상위 1% 부유층을 타깃으로 한 종부세 납부 대상이 되려면 강남의 대형 아파트 정도는 보유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젠 상황이 변했다. 1주택자 종부세 부과 기준인 공시가격 9억 원 초과 주택이 너무 많아졌다. 실제로 종부세 부과 기준(1주택자)을 공시가격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올린 2008년 9만3675가구(전체의 1.0%)였던 전국의 종부세 대상 공동주택은 올해 52만3983가구(3.7%)로 불어났다. 지난해(약 31만 가구)보다는 20만 가구 넘게 늘었다. 서울에선 공시가격 9억 원 초과 아파트가 40만6167가구(24.2%)로 네 채 중 한 채는 종부세를 내야 한다. 이쯤 되면 상위 1%가 내는 세금인 종부세가 ‘중산층세’ 또는 '서울 거주세'로 변질됐다고 보는 게 옳다.
종부세는 개인이 내야 하는 세금이지만, 부담은 한 집에 사는 생활 공동체인 가족이 모두 함께 떠안을 수밖에 없다. 종부세 부담을 이해하려면 가구 수에 부부일 경우 곱하기 2를, 4인 가족이면 곱하기 4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정부는 5~10년에 걸쳐 공시가격을 시세의 90%로 높일 계획이어서 종부세 대상 주택은 더욱 빠른 속도로 늘어나게 생겼다. 또 당장 오는 6월부터는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최고 세율이 2.7%에서 3%로 오른다. 이러니 “집 한 채 가진 게 죄냐”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때마침 4·7 재보선 참패 이후 집권 여당 내에선 종부세 완화 주장이 분출했다. 1주택자 종부세 과세 기준을 공시가격 9억 원 초과에서 12억 원 초과로 올리는 법안이 발의됐고, 부유세라는 취지에 맞게 집값 상위 1%에게만 종부세를 물리자는 의견도 나왔다.
당 차원에서도 부동산 정책을 전면적으로 손질하기 위해 부동산 특위까지 꾸렸다. 재보궐 선거에서 드러난 유권자들의 세금 불만을 잠재우지 않고선 내년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에서도 고전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정책 후퇴’라는 반론이 친문(親文) 강경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면서 부동산 세금 및 규제 완화 바람은 이내 삭풍으로 변했다. 선거 패배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대신 “부자 감세는 안 된다”는 규제 완화 신중론이 확산됐다. 급기야 종부세 완화 논의는 민주당 부동산 특위에서 후순위로 밀렸다. 지난해 4·15 총선 때 종부세를 완화할 것처럼 했다가 선거 후 없던 일로 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소수 고가 주택 및 다주택 보유자에게만 과세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종부세가 중산층에게까지 부담을 준다면 더 이상 종부세가 아니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1억 원을 넘어선 현실을 감안하면 13년째 제자리인 종부세 부과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강성 지지세력에 휘둘려 민심을 외면하는 건 공당(公黨)의 도리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정(失政)이 선거의 패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여당과 정부는 핵심 지지층 이탈과 조세 저항 사이에서 득실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실패한 부동산 정책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 계층을 편가르는 얄팍한 전술로 땜질하려 한다면 민심의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공자도 논어 학이(學而)편에서 “허물(잘못)이 있으면 고치는 것을 꺼리지 말라”(過則勿憚改·과즉물탄개)라고 했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제도나 기준은 빨리 바로잡는 것이 상책이다.
종부세 완화는 집값 폭등 탓에 세금 부담이 과중해진 은퇴자 등 1주택 실수요자를 배려하자는 취지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종부세 조정을 검토할 일이지 당내 세력 구도나 대선 전략으로 접근해선 곤란하다. 지금 집권 여당에게 필요한 건 정책 기조 유지가 아니라 규제 완화를 전제로 한 정책 전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