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국계 사모펀드(PEF)에 매각을 결정한 매그나칩반도체가 기술 유출 우려에 맞서 여론 반전에 나섰다. 과거 하이디스 경우와 이번 매각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5년간 한국에 2조 원가량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업계와 정치권 등에선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번 매각 계약이 국내 반도체 산업에 중국 자본 유입을 가속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어서다. 회사 측에서 내놓은 투자 계획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 유출 관련 해명이 석연치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일 매그나칩반도체는 2025년까지 서울, 청주 등 국내 연구·개발(R&D) 센터와 구미 생산시설에 약 2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R&D 센터에 약 3400억 원을 투자하고, 전력 반도체 제품을 생산하는 구미 생산시설에 930억 원을 투입한다. 이 투자 금액은 시장 상황에 따라 1100억 원까지 증가할 수 있다.
김영준 대표가 직접 나서 기술 유출 우려에 대한 반론도 내놨다. 주요 논지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인수 주체인 와이즈로드캐피탈이 동종 업계 경쟁사가 아닌 사모펀드 운용사라서 기술만 낚아채 갔던 ‘하이디스의 악몽’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이디스는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의 LCD 사업부에서 분사했다가 2002년 중국 BOE에 매각됐지만 핵심기술만 뺏긴 뒤 2008년 대만 기업에 팔렸다.
주요 생산품목인 OLED 디스플레이 구동칩(DDIC) 생산 과정에서, 일반 기능을 담당하는 블록과 고객 IP 블록이 분리돼 있어 ‘OLED 핵심기술’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우려를 완전히 해소해줄 수는 없는 수준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고객 IP 블록 분리를 언급했는데, 이는 매그나칩이 보유한 기술이 OLED 핵심기술이 아니라는 근거는 못 된다”라며 “OELD 구동칩 분야에서 세계 2~3위 점유율을 차지하는 회사다. 중국으로선 OLED 기술 격차를 줄일 수 있고, 한국 처지에선 놓치면 상당히 아쉬운 기술들을 가진 건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투자금 쓰임새에 대한 의문도 나왔다. 이날 매그나칩이 밝힌 투자 계획 중 투자처가 명확히 정해진 건 R&D센터(3400억 원)와 구미 생산시설(최대 1100억 원)뿐이다. 나머지 1조5000억 원은 어디에, 어떤 식으로 투입될지 미지수다.
회사 측은 "국내 임직원에 대한 급여와 복리후생 증진도 포함됐다"라고 설명했지만, 명확하지 않은 투자 계획이라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치권에서도 여야 할 것 없이 비판적 시각으로 이번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지난달 매그나칩반도체 매각 반대 의견문을 내고 기술 유출 우려를 표명한 김영식 국민의힘 구미시을 의원은 본지에 "인수 주체인 사모펀드가 '기술을 탐내는 게 아니라 키워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기술을 탐내지 않고 이뤄지는 딜이 있느냐"라고 말했다.
김 의원을 포함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산자위) 소속 야당 의원들도 반대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이 국가 안보와 연계되는 핵심 산업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굳이 중국 자본에 국내 반도체 기술을 넘겨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여당에선 이규민 의원이 이달 4일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청문회에서 "국가 핵심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매그나칩반도체의 중국 매각을 정부가 승인해선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당시 문 장관은 "전문위원회에서 국가 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를 검토 중"이라며 "자세히 들여다보고 보호해야 하면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한편 산자부는 매그나칩이 보유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를 이달 안에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만일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했다고 판단하면, 인수합병 심의를 위한 별도의 산업기술보호위원회가 꾸려져 매각 가능 여부를 판단한다. 이 경우 M&A 절차가 예상보다 지연되거나, 불발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