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검찰의 ‘복붙’ 치트키, 이젠 안 될걸요

입력 2021-05-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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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부 기자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은 실생활에서 굉장히 유용한 치트키다. 학생부터 직장인을 아울러 “복붙하면 되지”, “복붙해”라는 말을 최소 하루에 한 번은 사용한다. 세대를 초월하는 엄청난 단어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 노력을 들이기엔 하찮은 일이라고 느껴질 때, ‘굳이’라는 생각이 드는 과제를 마주할 때, 해당 업무의 무의미함을 나도 알고 상대방도 알 때 복붙이란 단어가 자연스레 등장한다.

검찰은 피의자들의 정보공개 청구에 복붙 치트키를 줄곧 사용해왔다. 검찰이 피의자들의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하는 답변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재판 관련 정보가 공개돼 직무수행을 곤란하게 할 경우’고 나머지는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다. 공공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비공개 대상 내용이다.

피의자들은 검찰의 기계적인 답변에 답답함을 호소한다. 본인들은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아니므로 공공이 관심을 가질만한 사건도 아닐뿐더러 수사기록이 공개되더라도 검찰의 직무수행을 곤란하게 할 만한 중요한 내용은 들어있지도 않다는 주장이다. 답답함을 표하는 건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 정보는 비실명화 작업을 거치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 우려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애초부터 검찰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는 것이다.

최근 이런 검찰의 답변에 이의를 제기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 자신의 수사기록을 정보공개 청구했던 피의자는 법 내용을 그대로 붙여넣은 검찰의 답변에 “개괄적 사유만을 근거로 공개 거부 처분한 것은 위법”이라며 검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를 받아들이면서 “검찰은 어느 부분이 어떤 법익과 기본권과 충돌돼 비공개 사유에 해당하는지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복붙 답변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었다.

지난주에는 참여연대가 청와대를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소송에서 법원이 참여연대의 손을 들어줬다. 청와대는 ‘업무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참여연대가 요청한 청와대 감찰반 운영 관련 정보에 비공개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개될 경우 국민 감시와 통제가 가능해지고 국민 신뢰가 제고된다고 판단했다.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 제고도 멀리 있지 않다. 복붙 답변 없애는 일, 이게 첫 번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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