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승규의 모두를 위한 경제] 택배 분쟁, 직접고용으로 풀자

입력 2021-05-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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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오야마학원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서울의 한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 차량의 지상통행을 금지하고 이에 대응하여 택배노조가 전국적인 부분 파업을 결의함으로써 택배 서비스를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언론에 오르내리는 여러 대증적인 처방은 또다시 돌출된 택배 산업의 근원적 모순을 외면하고 다시금 묻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택배기사들은 어느 특정 회사의 피고용자 신분이 아닌 ‘특수고용직노동자’로서 도급계약에 의거하여 배달 서비스를 제공한다. 노동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노동자이면서 자영업자라는 모순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들은 택배회사의 로고가 그려져 있지만 자신의 소유물인 트럭을 이용하여 물품을 배달한다. 회사 로고가 새겨진 개인 소유의 트럭은 잠재적인 신규 진입 노동자들에게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OO택배회사에서 XX아파트 단지로 가는 물량에 대한 독점권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사업 영역을 배타적으로 보장받는 이들은, 경쟁적으로 ‘콜’을 잡아 움직이는 대리운전자나 음식을 배달하는 라이더와 같은 ‘특고’라 분류하기에는 너무 다르다.

더 나아가 배타적 영역 구분은 택배기사들 사이의 갈등도 심화시킨다. 20~30대 맞벌이 부부가 많은 고층의 복도식 아파트 단지와 3~4층 빌라들로 가득 찬 좁은 주택가를 담당하는 택배기사들을 비교해 보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각 층의 엘리베이터 옆에 물품을 쌓아 두고, 내려오면서 각 현관 앞으로 배달하는 기사와 손수레를 끌고 10m쯤 가서 엘리베이터 없는 3~4층을 오르내리며 한 두 상자의 물량을 배달하는 기사의 노동 강도가 비슷할 수 없다. 전자의 경우에는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1억2000만 원의 연수익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자는 안정적으로 고수익을 누리는 동안, 후자는 충분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지속불가능한 노동을 이어가게 된다.

자기 자본을 선투자하고 그 대가로 특정 영역 내 배타적 영업권을 인정받는다는 점만 놓고 본다면, 택배기사들은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가맹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은 보다 나은 서비스를 통한 수요창출 동기가 매우 강한 반면, 주어진 물량을 배송하는 택배기사들은 그렇지 않다. 수요창출 동기와 무관한 배타적 영업권이 필요한지 의문이다. 실제 브랜드 파워에 비하여 개별 매장의 수요창출 능력이 미미한 스타벅스의 개별 매장들은 직영점으로 운영된다.

정부가 나서서 택배기사들에 대한 직접고용을 유도하고, 이들을 노동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하여야 한다. 직접고용은 직무 명령 권한과 노동 강도에 대한 책임을 내포한다. 가령, 손수레로 긴 거리를 이동하거나 언덕을 오르내려야 하는 업무, 수백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업무 등을 노동자 한 명당 주별 월별 몇 회 이하로 제한한다면, 회사는 그런 지역에 인원을 확충하고, 해당 노동자들을 일정 기간 후에 수월한 지역으로 재배치할 것이다. 이와 아울러 배송 물량에 비례하는 현 보수체계를 기본급 중심으로 개편해서, 어떤 지역을 담당하든 충분한 기본급을 보장받도록 해야 한다.

택배회사의 입장에서도 배송 기사들에 대한 직접고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실제 쿠팡은 ‘쿠팡맨’이라는 명칭하에 배달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고 있다. (쿠팡 물류센터 직원들의 과로사 등 가슴 아픈 소식들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이는 기사들이 아닌 물류센터 근무자들과 관련된 문제로, 노동 강도에 대한 규제 강화로 풀어야 한다.) 도급계약에만 의존하는 택배회사들의 경우, 그날의 물량과 상관없이 정해진 시간에 배송한다. 경직적이다. 쿠팡처럼 택배기사들을 직접 고용할 경우, 물량에 따라 배송 시간과 횟수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 이른바 로켓배송이나 3시간 단위 예약 배송이 가능해진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택배노조의 협조다. 더 적은 보수를 받는 기사일수록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일부 조합원들을 설득하여 전체에 이익이 되는 나눔과 분담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정부가 노동법 안에서 택배회사들을 관리·감독하고, 택배회사들이 택배기사들을 직접 고용한다면, 더 나은 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다. 소비자들은 더 나은 배송서비스에 지갑을 열 것이고, 따라서 전체 택배기사들의 수입도 향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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