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코로나19가 던진 숙제, 공공의료 확충

입력 2021-05-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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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경북 경산에 살던 정유엽(당시 17세) 군은 지난해 3월 코로나19로 인한 의료체계 공백 속에서 사망했다. 정 군은 40도가 넘는 고열로 선별진료소가 있는 경산지역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당했다. 이틀 만에 구급차 대신 부친 차를 타고 대구 영남대병원에 입원했으나 끝내 폐렴으로 숨졌다. 열이 난 지 엿새 만이다. 정 군의 부친은 아들의 1주기를 맞아 경산에서 청와대까지 공공의료 체계 강화 등을 요구하는 380㎞의 도보행진을 하기도 했다.

1년 반이 다 되어 가도록 현재진행형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에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해묵은 과제를 다시 무겁게 던지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병원 수나 병상 수, 환자의 의료접근 기회 등 전체 의료상황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돋보인 K방역의 이면에 허술한 공공의료의 실태가 드러났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4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5개의 2.8배에 달했다. 이는 조사 대상 37개 국가 중 두 번째로 많은 수치이다. 그러나 공공의료로 눈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1000명당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는 1.23개에 불과하다. 공공의료기관 수는 221개로 전체 병원의 5.7%,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는 6만2240개로 전체 병상의 10.2% 정도이다. 두 수치 모두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공공의료기관 52.4%, 병상 71.4%인 OECD 평균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2019 공공보건의료 통계집)

민간병원들은 여러 이유로 코로나19 환자의 입원을 꺼린다. 치료가 힘들고 수익성도 높지 않은데다 다른 환자들이 코로나19 환자가 입원한 병원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반면 공공병원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이 필요한 감염병과 비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 재난으로 인한 환자의 진료 등 관리에 관한 사업’을 수행할 의무가 있다.(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다목) 그래서 지난 1년여의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코로나19 환자의 80% 가까이를 전체 의료기관의 10%도 안 되는 공공의료기관에서 치료했다.

그나마 부족한 공공의료체계도 지역별로 편중돼 전국 70개 진료권 중 울산, 세종 등 27곳에는 공공병원이 전무한 실정이다. 특히 수도권·대도시로 의료자원이 집중되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도시와 농어촌 간 의료 접근성, 사망률 등 건강 수준의 격차가 크다. 정 군의 사례가 보여주는 ‘치료 가능한 사망률(amenable mortality rate)’의 지역 간 격차는 더욱 심각하다. 2017년 보건의료실태조사에 따르면 치료 가능한 사망자 수를 시·도별로 보면 인구 10만 명당 서울이 44.6명인 반면 충북은 58.5명이고, 시·군·구별로는 인구 10만 명당 서울 강남구가 29.6명인 반면 경북 영양군은 107.8명으로 나타났다.

지역 간 의료 격차는 응급·외상·심뇌혈관 등 생명과 밀접한 필수중증의료 분야에서 더욱 드러난다. 인구 10만 명당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서울은 28.3명인 반면 경남은 45.3명에 이른다. 고위험 산모·신생아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모가 분만의료기관에 도달하는 평균시간은 서울이 3.1분인 반면 전남은 42.4분에 이르고, 신생아 사망 수는 1000명당 서울이 1.1명인 반면 대구는 4.4명에 이른다.

이렇듯 코로나19 상황에서 지역 의료 체계 공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지만 정부의 지역의료원 지원 예산 규모는 작고 통합적이지 못하다. 정부의 ‘지역거점병원 공공성강화 사업’은 지방의료원 시설장비 현대화, 적십자병원 기능보강사업 등 13개 세부사업 1433억 원 정도로 예산 규모가 미미한 수준이다. 더구나 코로나19 발생 이후에도 예산 증가액은 168억 원에 그치고 있고 예산의 규모에 비해 다양한 세부사업으로 나뉘어져 정작 의료 시설 장비 및 감염병 대응에는 미흡한 측면이 있다.

정부는 지역거점병원에 대한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증액해야 하는 예산 항목은 시설과 인력이다. 먼저 지역거점 공공병원의 응급·외상·심뇌혈관 등 생명과 밀접한 필수중증의료, 감염병 대응 관련 노후시설 및 장비를 보강해야 한다. 또한 지역거점 공공병원이 우수 의료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예산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대체로 인구수를 먼저 검토한다. 하지만 의료 분야에서는 인구수보다 공공의료 부족 정도와 산모·신생아, 어린이,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우선순위 결정 기준이 되어야 한다.

자치단체는 정부에 협조해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건강관리와 인프라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경남도는 ‘서부경남 공공의료 확충 공론화협의회’를 구성했다. 서부경남 5개 시군별 100명의 주민으로 참여단을 만들어 공공병원의 필요성, 설립조건, 역할 등을 공론의제로 결정한다. 이렇듯 자치단체는 지역의료기관, 보건소, 전문가, 주민 등이 함께 지역별 특성에 맞는 사업을 발굴하고 의료 수요에 대응해야 한다.

국가적 의료 재난 상황에서 정부 및 자치단체의 공공의료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의료공급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민간의료기관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현재 공공의료는 심각한 적자 누적 상황으로 공공의료 확대 시 정부부처 및 지자체의 예산 집행 방식만으로는 효과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 임대형 민간투자사업(BTL) 등 민간 투자사업 활성화를 통한 재원 조달방식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최근 신·증축을 통해 3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으로 개원한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의 경우 BTL방식으로 540억원 규모의 사업비를 조달한 바 있다.

코로나19 시기 교육, 주거, 교통 등과 마찬가지로 의료의 공공성 강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제 공공의료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이다. 국민의 ‘안전’과 ‘건강’이 곧 국가의 ‘안보’와 ‘지속가능성’이다. 코로나19가 누구에게나 닥치는 재난이듯이 누구든지 아프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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