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 방식에 차이는 있지만 각국이 추진하는 그린 뉴딜에는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응급 경기부양책이나 일자리 사업뿐 아니라, 생산과 소비방식을 구조적으로 개혁해 ‘저탄소화-순환경제화-디지털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발전’경로에 오르겠다는 장기 전략, 그리고 1.5℃ 지구 온난화 목표에 부합하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와 실행전략이 포함되어 있다. 눈에 띄는 점은 그간 장기비전을 말할 때 궁극적으로는 지향하지만 급하면 미뤄도 되는 정도로 취급되던 ‘저탄소화와 자원순환’이 그린 뉴딜에서는 에너지, 산업, 교통, 지역발전, 건물, 보건, 사회통합정책 등 거의 모든 분야에 핵심 기준이자 지극히 경제적인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의 표현대로 ‘그린 뉴딜이 다시’ 그것도 강력한 구심력을 갖춰 떠오른 것이다.
작년 7월 발표된 한국판 그린 뉴딜 역시 앞서 언급한 내용을 골고루 담고 있다. 2020~2025년 동안 약 73조4000억 원을 투입해 단기적으로는 팬데믹으로 줄어든 일자리를 창출하고 궁극적으로는 저탄소 산업생태계를 구축해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겠다는 목표도 EU나 미국의 그린 뉴딜 목표와 유사하다. 석 달 뒤 ‘2050 탄소중립’ 선언은 ‘순배출량 제로’를 이룰 시점을 2050년으로 확정했다. 이로써 그린 뉴딜은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게 된 것이다. 올해에는 그린 뉴딜과 탄소중립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입법화가 진행 중이며, 기후대응기금, ‘그린 분류체계’, 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개인과 지역의 그린 전환을 지원하는 공정한 전환 메커니즘, 탄소가격 신호를 분명하게 하기 위한 탄소세 및 에너지세 조정, 저탄소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탄소중립위원회 설치를 통한 실행 거버넌스 보완 등 범정부 차원의 다양한 재정계획 및 정책 인프라가 준비 중이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의지와 재정 투입만으로 탄소중립을 이룰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그린 뉴딜이나 탄소중립의 스케일이 크다. 결국 민간의 자원과 행태 변화가 뒷받침돼야 대전환의 실마리가 열린다. 민간의 참여가 없다면 그린 뉴딜은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없으며 구조 전환을 견인할 힘도 재원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그린 뉴딜은 사회구성원들과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시작되었다기보다 정부 주도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올 상반기 그린 뉴딜과 탄소중립에는 분명 이전과 다른 기류가 감지된다. 글로벌 가치사슬상 ‘고객’에 해당하는 세계적 기업이 ‘RE100이나 ESG 경영 또는 배출량 데이터 공개를 요구’한 것이 계기일지는 모르나 한국 기업들이 매우 능동적으로, 상당한 추진력을 가지고 ‘그린 웨이브’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100개 이상의 금융기관들 역시 프로젝트의 저탄소와 지속가능성 정도, 기업의 ESG 성과나 기후변화에의 영향을 주요 투자지침으로 삼겠다고 선언하며 그린 뉴딜에 힘을 보태고 있다.
관건은 이러한 관심과 우려가 행동 변화와 비용분담까지 이어질 수 있는가이다. 특히 탄소 다배출 제조업 중심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어 전환 비용이 만만치 않을 우리로서는 큰 결심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기업, 소비자가 탄소중립을 목표로 그린 뉴딜의 세부전략을 하나씩 실행해 나간다면 우리는 저탄소 제조업 부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성장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오늘날 우리가 처한 어려움, 즉 ‘저탄소 전환을 어렵게 하는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나 ‘주요 수출국의 탄소국경조정세 위협’, ‘국제사회로부터의 감축목표 상향 조정 요구’ 등이 훗날 ‘변장하고 찾아온 축복(blessing in disguise)’이 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