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삼성중공업은 왜 무상감자를 했을까

입력 2021-06-02 09:30 수정 2021-06-0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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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흠 회계사.
▲박동흠 회계사.

평화로운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삼성중공업이 무시무시한 무상감자 공시를 내자 일부 주주들이 패닉에 빠졌다. 다음날 주식시장이 하루 쉬었기에 일종의 냉각 기간을 보내는 듯싶었다.

하지만 무상감자의 화제성이 꽤 커서 그랬는지 지난달 6일 삼성중공업 주가는 개장하자마자 전 거래일 대비 21%가량 떨어졌다. 다행히 장중에 조금씩 안정세를 되찾았지만 여전히 주가는 무상감자 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감자는 어감부터 좋지 않다. 오죽하면 감자탕 끓여 먹는다는 자조 섞인 얘기까지 나올까? 그런데 무상감자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정말 감자탕이 될 수도 있고 피해 안 끼치고 무사히 지나가는 태풍일 수도 있다.

감자는 자본금을 줄인다는 뜻이다. 자본금은 주식 수와 액면가액의 곱으로 계산한다. 삼성중공업은 액면가 5000원에 6억3011만4845주를 발행했다. 자본금 총계는 이 둘의 곱인 3조1505억 원이다. 액면가액을 초과해서 주식을 발행하던지 혹은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액면가 대비 수십 배 뛰어도 상관없다. 자본금은 오로지 발행 주식 수와 액면가액의 곱으로 계산된다.

그렇기에 자본금을 줄이려면 주식 수를 줄이던가 액면가액을 내리면 된다. 쉽게 말해 주식 수 줄이기는 곧 주주들에게 준 주식을 없애겠다는 의미이다. 주주들에게 대가를 주고 회수해야 하는데 ‘무상’ 감자니까 돈 안 주고 주식만 가져가는 셈이다. 이거야말로 ‘공포의 감자탕’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기업은 왜 이런 감자에 나설까? 대부분 기업이 망해가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기업 자금 사정이 나빠지니 은행도 기업에 빌려준 돈을 찾아올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다. 물론 기업을 청산시켜서 최대한 회수해도 되지만 그렇게 되면 주주 피해가 가장 막심할 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적으로도 큰 손해일 수 있다. 또한, HMM처럼 불황의 터널을 지나 호시절을 되찾는 기업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은행은 받아야 할 돈을 포기하고 그 대신 기업의 주식을 인수하고 경영에 참여하려 한다. 기업을 정상화해야 기업가치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은행도 주식을 매각하고 못 받았던 돈도 회수할 수 있다. 이는 은행이 해당 기업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려는 배경이다.

예컨대, 이미 2000만 주를 발행했지만 도산 직전까지 간 기업이 있다고 치자. 주거래은행은 기업에 빌려준 대출채권을 포기한 대신에 주식을 발행해서 받기로 했다. 받아야 하는 원리금을 계산해보니 주식 500만주치에 달한다.

이렇게 주식을 그냥 발행하면 은행의 회사에 대한 지분율은 20%밖에 안 된다. 최대주주의 지위에 오르기엔 부족한 수준이다. 그래서 회사는 5:1 감자를 단행하기로 했다. 즉 2000만주를 400만주로 줄인 다음에 주거래은행에 500만주 주식을 발행해서 준다. 그러면 주거래은행은 50% 넘는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이 회사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 입장에선 보유주식 5주가 1주가 되기 때문에 손해가 막심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이 계속 존속하고 상장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무상감자에 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다시 삼성중공업으로 돌아보자. 삼성중공업은 주식 수를 줄이는 게 아니라 액면가액을 줄이는 방식으로 무상감자를 진행할 예정이다. 즉 1주당 액면가액 5000원짜리 주식을 1000원으로 내리는 것이다. 자본잠식을 막기 위한 취지다.

한국거래소의 상장폐지 관련 규정을 살펴보면 코스피 종목이 자본잠식률 50% 이상 되면 관리종목 지정, 2년 연속 50% 이상이면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자본잠식률은 ‘(자본금-자본총계)/자본금’으로 계산된다. 2021년 1분기까지 삼성중공업은 자본잠식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올 1분기에만 벌써 5000억 원이 넘는 순손실을 기록했고 앞으로도 순손실을 이어갈 가능성도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선제대응 성격으로 무상감자를 결정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누적손실이 커지면서 자본잠식이 시작된다면, 무상감자로 자본금을 줄이는 방안이 자본잠식을 피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삼성중공업은 눈물의 무상감자를 단행했지만, 마냥 절망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주식의 액면가액만 내렸을 뿐 사실상 기업가치에는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업이 침체기를 지나 다시 주문량도 늘고 선가도 오를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도 뒷받침해주는 상황이다.

무상감자의 아픔이 있었지만, 삼성중공업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주주들에게 회사는 훗날 호실적과 높은 기업가치로 꼭 보상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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