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몸조리

입력 2021-06-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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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

“몸조리를 잘못해서 그런 겁니다.” 이 한마디면 중년 이후 여성의 아픈 원인을 반 이상은 커버할 수 있다. 30년을 진료해 오면서 몸조리를 잘해서 건강하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몸조리는 언제나 잘못했다는 서술어와 연결되는 단어다. 아내에게서 몸조리 얘기가 나오면 입을 다물거나 그렇다고 인정해 줄 일이다. 조금이라도 토를 달면 안 된다. 싸움이 될 테니.

“원장님, 안녕하세요? 혈압약이 다 떨어져가요.” “벌써 두 달이 됐나요? 시간 참 잘 가지요?” “그러게요. 근데 원장님, 요새 왜 그리 몸이 찌뿌듯하고 피곤한지 모르겠어요. 팔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고요. 앉았다 일어나면 어질어질해요. 손발도 시리고, 애들은 덥다고 난리인데 전 추워서 두꺼운 옷을 껴입어야 해요.” “그러세요? 혈압도 재고, 진찰도 해 볼게요.” 얼마 후 “혈압도 잘 조절되고, 진찰에서도 이상 없습니다. 말씀하신 증상들은 특별한 게 아니니 걱정 마세요.” “애 낳고 몸조리를 잘못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하도 몸이 안 좋아서 한의원에 갔더니 거기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이러면 의사인 나는 아내에게 그런 것처럼 환자에게도 토를 달기 어렵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몸조리를 잘못해서 그렇다’는 확고한 믿음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가. 지금까지 40~50년을 살아온 시간들은 건강에 아무런 영향을 안 미치고 오직 잘못된 몸조리만이 원인인가. ‘몸조리를 잘못해서 그렇다’는 말은 의사에게는 아픈 이유를 설명하는 편리한 수단이고, 환자에게는 자신의 잘못된 생활습관에는 눈을 가린 채 오래전의 일인 몸조리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다. 더 나아가 자기 병은 결코 낫는 게 아니라는 그릇된 믿음을 갖게 할 뿐 아니라, 몸조리를 잘못하게 만든 시어머니와 남편을 원망하는 근거가 된다.

영국 윌리엄 왕자의 부인 케이트 미들턴은 아들 둘에 딸 한 명을 낳았다. 세 번 다 출산 당일 포대기에 싼 아이를 안고 하이힐을 신은 채 찬바람을 맞으며 언론 앞에 섰고, 당일 퇴원하여 궁으로 돌아갔다. 우리로 치면 몸조리를 전혀 안 한 거다. 그럼 지금쯤 케이트 미들턴은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어 날마다 윌리엄 왕자에게 투덜대며 살고 있으려나.

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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