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에 만들어졌으니 아주 클래식한 영화도 아니다. 당시 이 영화는 대만의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영화로 한국에 소개됐다. 선전 홍보 영화가 주류를 이루었던 대만에 새로운 물결이 일어난 것이다. 서민의 생활과 애환, 현대 도시인의 우울이나 불안 등을 살피고 한 가족이나 개인이 전쟁 이후에 겪게 되는 아픔을 대만의 젊은 영화인들이 감지해 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뉴웨이브 선두주자였던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였고 유수의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터라 나는 필사적으로 이 영화를 구해 보았다. VHS 테이프가 원본이어서 여러 번 복사를 뜨다 보니 나중에는 영어로 된 자막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런닝타임은 무려 4시간에 육박한다.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했다. 이 영화를 디지털 리마스터링 한 걸로 다시 보고 있자니 새삼 세상 참 좋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1960년, 대만 사회는 국공내전 이후 ‘본토’에서 건너온 사람들로 인해 혼란을 겪었다. 그리고 이 혼란으로 당시 청소년들이 아노미 현상을 겪으며 폭력에 의존하지만 어른이나 학교나 젊은이들에게 시선을 둘 여유가 없다. 의도치 않게 이 혼란에 휘말린 소년 샤오쓰(장첸)는 친구, 가족 그리고 좋아하는 소녀 밍(양정의)의 문제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대만 역사에서 미성년자가 저지른 최초의 살인사건이었던 실화를 영화로 옮긴 이 영화는 특히 아름다운 미쟝센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한 컷 한 컷을 프리즈하면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완벽한 구도를 만든다. 사물을 걸쳐 찍거나 카메라를 픽스하고 롱테이크로 찍은 장면 등은 임권택 감독의 연출을 연상케 한다.
인간의 삶 속에 오묘하게 숨겨 있는 비밀들을 충실하게 재현해 내고 있어 긴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한 컷도 놓칠 수가 없다. 한번 명작에 도전해 보시라.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