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초록 태릉을 회색빛으로 물들일 이유는 없다

입력 2021-06-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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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를 위해 지인의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지인의 가족 중 초등학생인 아이가 창밖을 보더니 문득 질문했다. “저 사람들은 왜 집을 지으면 안 된다고 하는 거야? 집이 많아져야 나도 나중에 커서 더 좋은 집에서 살지.”

아이의 엄마는 답했다. “집만 늘어난다고 좋은 게 아냐. 좋은 환경에서 살아야 좋은 거지. 네가 커서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사는데, 주변에 놀이터도 없고 동네에 차들만 엄청 많이 다닌다고 생각해 봐. 네 아이가 친구들이랑 뛰어놀 데도 없는데, 좋겠어?”

아이는 말했다. “왠지 슬플 것 같네. 그럼 저 사람들은 나 같은 애들을 위해서 집 짓지 말라는 거야?”

엄마는 아이를 바라보며 설명했다. “너희 학교 선생님도 실수한 적 있지? 알게 모르게 선생님들도 실수할 때가 있을 거야. 사람이면 다 실수는 하는 거란다. 저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선생님 같은 분들(대통령, 장관, 구청장)이 실수한 걸 바로잡자고 주장하는 거란다.”

최근 매주 토요일 오후 서울 노원구 롯데백화점 노원점 앞에서 진행하는 태릉골프장(CC) 개발 반대 서명을 바라보며 엄마와 아이가 대화를 나눈 내용이다. 노원구 주민들은 태릉CC 개발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승록 노원구청장에 대한 주민소환투표를 위해 이곳에서 서명을 받고 있다. 21일까지 서명을 받아 노원구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노원구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나선 행동 하나하나가 미래 자신의 아이들에게 더 나은 터전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노원구의 한 주민은 기자에게 “물론 ‘내 집’이 필요해서 주택 공급을 찬성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찬성하는 사람 대다수는 집값을 올리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이라며 “미래 내 아이들이, 우리 후손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기 위해서는 그린벨트 해제를 막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말했다.

정부는 이런 노원구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노원구와 협의를 통해 태릉CC 개발을 정상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앞서 정부는 8·4대책에서 태릉CC를 개발해 주택 1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단호한 개발 계획 추진에도 노원구 주민들은 최근 정부과천청사 부지 개발 백지화로 희망을 얻었다. 국토교통부는 정부과천청사 부지를 개발해 4000가구를 공급하기로 한 계획을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4일 철회했다. 대신 과천지구 내 자족용지와 대체 부지를 통해 4300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다. 노원구 주민들은 주민 반대로 무산된 과천 사례를 바라보며 “조삼모사식 개발 철회가 아닌, 전면 철회를 이끌어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쉽지는 않다. 과천시가 정부과천청사 부지 개발을 전면 반대한 것과 다르게 노원구 측은 국토부와 주택 공급계획만 절반 수준으로 합의를 이끌어냈다. 태릉CC를 개발해 1만 가구를 공급하려던 계획을 절반 수준으로 낮추는 방향으로 협의 중이다.

태릉CC 개발 반대를 외치던 한 주민의 발언이 뇌리에 깊이 박혔다. “태릉CC 그린벨트 개발은 자연 훼손이자 파괴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자동차 매연과 답답한 환경에서 살기보단 쾌적한 환경에서 숨 쉬며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소중한 녹지에 시멘트를 들이붓지 말고 자연 그대로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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