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유비무환

입력 2021-06-14 17:55 수정 2021-06-1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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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호 자본시장부장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이는 ‘긴축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금리가 상승하는 환경이 조성되면 미 중앙은행(Fed) 관점에서 결국 도움이 될 것”이라며 “미국은 10년간 너무 낮은 인플레이션과 금리와 싸우고 있다. 정상적 금리 환경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나 홀로 ‘동결’을 외치기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이주열 한은 총재의 발언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이 총재는 11일 한국은행 71주년 창립기념사에서 “우리 경제가 견실한 회복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면 현재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향후 적절한 시점부터 질서 있게 정상화해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향후 벌어질 후폭풍과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경제성장을 걱정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면 장래의 잠재적 위험이 커질 것이고, 금리 인상 속도가 과도하면 또 다른 위험의 불씨가 된다.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빨라지면서 세계 경제 회복에 탄력이 붙고 낙관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IMF는 최근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애초 1월 전망치보다 0.5%포인트 상향 조정한 6.0%로 전망했다. 그런데 최근 투자심리에 충격을 줄 만한 특별한 요인이 없고 경제지표들도 양호한 모습이지만 ‘테이퍼 탠트럼(긴축 발작)’ 걱정이라는 심리적 요인만으로 주가가 급등락하는 현상이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해외 의존도가 심한 국가인 한국으로서는 주요국 통화당국이 공조하며 금리를 점진적으로 올려 나가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미국발(發) 버블 붕괴의 전조로 생각되는 기술주의 부진, 예상보다 빠른 금리 인상 전망과 함께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한 가지 짚어야 할 부분은 코로나19라는 최악의 재난 속에서도 글로벌 경기가 이 정도로 버틴 데에는 저금리에 의존한 바가 크며, 생산성 향상이 아닌 막대한 돈 풀기를 통해 경기를 살리려고 해 왔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3대 경제 주체로 꼽히는 가계·비금융 기업·정부가 진 총부채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선진국은 151조 달러, 신흥국은 59조 달러에 달한다. 2019년 각각 137조 달러, 54조 달러에서 크게 늘었다. OECD는 “정부의 정책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고, 초저금리를 유지하면서 부실기업의 부채가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며 “향후 경기가 둔화하고, 정부의 지원이 줄어들 때 부채비율이 높은 곳에서 대규모 디폴트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준이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밝힌 “부풀었던 자산 가격이 꺼지면서 미국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위험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금리 인상기에 들어서면 각국은 부채 수준에 따라 늘어나는 기존 부채의 재발행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자산 가격의 거품도 꺼질 게 분명하다.

한국 경제도 국제 금융시장 환경의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수출과 경상수지 등 주요 경제지표가 양호하고 올해도 3.6% 내외의 경제성장이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를 향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거센 통상 압박, 중국의 견제 및 좁아진 기술격차, 더딘 코로나 백신 보급 등 장밋빛 전망을 바라기에는 발목 잡힐 요인이 많다. 4월 전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1.1% 감소했다. 생산 능력 대비 생산 실적을 뜻하는 제조업 가동률지수(99.2)도 기계장비, 석유정제 등에서 늘었지만 자동차, 기계장비 등에서 줄어 전월 대비 1.4% 줄었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73.8%로 지난달과 비교해 1.1%포인트(p) 하락했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를 줄이는 디레버리징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그나마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버텨 나가고 있다. 반면에 우리 경제는 저금리를 이어가면서 가계나 기업이 부채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하지 못해 금리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최근 가계부채 관리 강화로 은행권 대출이 어려워졌지만, 5월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24조1000억 원에 달한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은 정체 또는 감소하고 있지만,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분기 말 현재 181.1%로 지난해보다 18.0%포인트 올랐다. 그만큼 가계의 채무 상환 부담이 커진 것이다.

금리가 오르면 일차적 부담은 부채 의존도가 높은 자영업자나 한계가구 및 한계기업이 될 것이며, 이들을 중심으로 디레버리징 사이클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가계대출 금리가 1%포인트(p) 높아지면 대출자가 부담해야 하는 이자가 12조 원 가까이 불어난다.

닥칠 수 있는 위기 가능성을 열어두고 부실 위험이 있는 기업과 가계의 대응책을 미리 마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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