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뒤늦게 제정된 기금사업 관리지침을 제대로 된 안내 없이 전담기관마다 중구난방식으로 소급적용하면서 99곳의 중소기업이 지원사업에서 무더기 탈락하는 등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양정숙(무소속)ㆍ변재일(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올해 3월 31일 제정된 기금사업 관리지침을 이미 사업공고와 신청접수가 마감된 사업에까지 소급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이를 미리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평가대상에서 제외되거나 감점 처리되면서 사업에서 대거 탈락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말부터 정부 지원사업과 연구과제에만 의존하며 연명하는 일명 ‘좀비기업’을 퇴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본잠식에 해당한 기업은 정부사업 참여를 제한하는 기금사업 관리지침 제정에 착수해 시행하고 있다.
새롭게 제정된 기금사업 관리지침이 적용되는 과기정통부 지원사업은 총 71개다. 이 중 15개 사업은 지침이 제정되기 이전인 올해 1월부터 정보통신산업진흥원과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등의 전담기관을 통해 사업이 착수돼 사업공고와 신청접수가 마무리되고 선정평가를 앞둔 상태였다.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금사업 관리지침을 소급적용하면 혼선과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됐으나, 과기정통부와 전담기관들은 이 같은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리하게 적용해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 두 의원의 판단이다. 특히, 과기정통부와 전담기관들은 사업을 공고하는 단계에서 제정 작업에 있는 지침을 적용할 것이라는 예고를 비롯해 지침 제정이 완료된 이후에 접수한 사업에 대해서도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안내하지 않았다고 두 의원은 주장했다.
과기정통부의 지침 소급적용으로 중소기업 99곳에 피해가 발생했다. 이중 정보통신산업진흥원과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에 신청한 37개사는 제안서를 제출하고도 평가 자체를 받지 못한 채 서류접수 단계에서 탈락했다. 또한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 지원한 62개사는 평가는 받았지만, 참여 비율 만큼 감점 처리가 되면서 최종 4개사만 선정됐고 58개는 탈락했다. 이 과정에서 선정대상에 있던 15개 기업은 감점 처리로 순위가 뒤바뀌거나 커트라인 점수 이하로 밀려나면서 과제에서 모두 탈락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 원인은 과기정통부가 제정한 ‘기금사업 협약체결 및 사업비 관리 등에 관한 지침’ 부칙에 서로 상충하는 조항이 들어가 있고, 이것을 전담기관이 제각각 해석한데 따른 것이다. 지침의 부칙 제3조 적용례를 보면 ‘1월 1일 이후 체결된 협약부터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제4조 경과조치를 통해서는 ‘제3조에도 불구하고 이 지침 시행 전에 체결된 협약은 협약 체결 당시의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실제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은 자본잠식에 해당하는 기업이 포함된 컨소시엄을 평가대상으로 포함해 평가점수를 부여한 후 참여 비율 만큼 감점 처리했지만, 정보통신산업진흥원과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은 자본잠식에 해당하는 기업만 평가에서 제외하고 해당 컨소시엄은 정상적으로 평가를 했다.
이에 몇몇 피해 중소기업은 해당 전담기관에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행정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재일 의원은 “소급이 법에 적용되는 것은 소급의 공익이 월등히 큰 5ㆍ18 법 등에서나 논의됐던 것인데, 기업의 이익을 저해하는 평가배제항목의 소급을 부칙에서 정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며 “전담기관마다 제재조항을 제각각 해석하면서 기금사업의 기준이 전담기관에 따라 달라지는 고무줄 제재가 이뤄진 것은 행정의 일관성과 예측성을 무너트린 나쁜 사례로 남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양정숙 의원은 “뒤늦게 제정된 지침을 사전준비와 원칙도 없이 무리하게 소급적용하면서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일로 가뜩이나 경제 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중소기업에 희망을 빼앗고 고통만 가중한 전형적인 무능 행정의 극치를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변 의원과 양 의원은 지침 제정 및 적용과 관련한 감사원 감사를 국회 차원에서 요청할 계획으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시급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