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따라 임금 올라 조기 퇴출…임금피크제는 임시방편일 뿐
정부, 연금 전 중고령자 위한 일자리 제공에 적극 나서야
표준 모델에 따르면 법정 정년을 만 65세로 늦춰야 할 것 같지만, 한국의 노동시장은 이런 표준 모델과 동떨어져 있다. 법정 정년인 만 60세까지 안정적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 60세에 정년퇴직해 9개월 실업급여를 받고 나면 약 4년간 소득에 공백이 생긴다(정년퇴직은 비자발적인 퇴직이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노후가 불안정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법정 정년을 연장하면 노동시장 중심부에 있는 이들만 혜택을 볼 가능성이 크다.
세계 각국은 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더불어 하위 계층의 노후 보장에 시선을 돌리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재조준화’라고 한다. 보험료를 일정 기간 낸 뒤 돌려받는 연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하에, 조세를 기반으로 한 연금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기초연금이 이에 해당한다. 국민연금 가입자 중 납부예외자가 328만 명(약 15.1%), 13개월 이상 장기 체납자가 106만 명(약 4.9%)에 달하고 자영업자의 국민연금 가입률이 50%대에 머물며 국민연금 최소 가입 기간 10년을 채우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국민연금에서 배제되는 이들이 많은 한국에서, 만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면 무조건 받을 수 있는 기초연금은 하위 계층의 노후 보장에 특히 중요하다.
정부는 급한 대로 정년 직전의 몇 년 동안 임금을 일부 삭감하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독려하고 있다. 현재 정년 운영 사업체 다섯 곳 중 한 곳, 300인 이상 대기업의 절반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것이 지속 가능한 대안이라는 공감대는 높지 않다.
때에 따라서는 임금피크제로 줄어든 임금이라 해도 생산성보다 여전히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전히 수많은 노동자가 정년보다 이른 시기에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중고령자가 주된 일자리에서 조기 퇴출당하는 현실이 연차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체계, 즉 연공급 체계와 관련이 깊다고 보고 있다. 이에 임금피크제가 근시안적인 임시방편이며 나이 든 한국 노동자의 상황을 개선하려면 임금을 연차가 아닌 직무(에 필요한 숙련) 기반으로 바꿔 가는 게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연금을 받기 전까지 중고령자의 일자리 제공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주된 일자리에서 이탈한 후 연금 수급 때까지 막막한 상황을 겪어야 하는 고령 근로자들이 다수”라며 “최소한 연금 수급 연령까지는 주된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