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산업 강국 반열에 올려놓은 굴뚝 산업. 고로에서 녹아내리는 역동적인 쇳물은 50여 년 간 대한민국의 자동차·조선·건설·가전·기계 등 전방산업과 희로애락을 같이 했고, 1887년 3월 경복궁 건청궁에 최초의 전깃불을 밝힌 한국전력공사(구 한성전기)는 130여 년 간 한강의 기적을 함께해오며 현재 2300만여 가구와 산업 전반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일군 기적은 엄청난 양의 탄소발자국을 남겼고, 이들 기간산업에 ‘기후위기 주범’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자동차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이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국내 경제 구조상, 화석연료를 대체하기에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의 60%가 산업 부문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탄소중립은 기업, 나아가 인류의 생존을 위해 거스를 수 없는 거대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기업의 윤리와 지속가능성을 판단하는 잣대가 됐고, 기업 경쟁력과 투자 지표로도 활용된다.
포브스에 따르면 올 3월까지 전 세계 2000대 공기업의 약 21%가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넷 제로)’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내에서도 에너지 부문을 중심으로 탄소중립을 시대적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달 10일 열린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전력공기업 간담회’에서 “향후 30년, 전력공기업은 안정적 전력공급이라는 기본 역할에 더해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감당해야 할 때”라며 △공급 △전달 △산업생태계 등 3대 분야의 혁신을 강조했다.
실제로 작년 말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추진 전략이 발표된 후 산업계에서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특히 포스코와 한전 등으로 대표되는 굴뚝 산업은 탄소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표방하며 친환경·탄소중립을 최우선한 과감한 지배구조 개선과 비즈니스 모델 전환, 획기적인 신기술 개발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또 이미 손안에 있는 기술의 철저한 비용 절감과 이를 사회에 보급시키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다.
정부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2050년까지는 앞으로 30년. 이와 보조를 맞추기 위한 기업들의 탈(脫)탄소 움직임에 한층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