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한글 배우니 혈당이 좋아진다?

입력 2021-06-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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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혜인(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퇴행성 무릎관절염. 처음 그 할머니를 뵈었을 때 가지고 있었던 병력들이다. 체중이 87㎏에 달하니, 이 체중을 줄이지 않고서는 혈당도 혈압도 무릎의 통증도 조절이 요원했다. 나는 진료실에서 열심히 혈당 조절에 대한 설명을 했다. 운동을 하실 수 있도록 어르신 무료운동교실에도 연결해 드렸으나, 두어 번 나오시는가 싶더니 이내 발길을 끊고 오직 진료만 받으러 오셨다. 혈당은 쉽게 조절되지 않았다.

일차의료 만성질환 시범사업이 시작되면서 혈당 조절이 안 되는 분들에 대한 집중 교육을 다짐하고 간호사가 할머니를 상담실로 모시자, 진료실에서 숱하게 만나왔던 나에게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고백을 하셨다. “저는 사실 글을 몰라요.”

교육자료를 가지고 집중적인 교육을 준비하고 있던 간호사는 당황하였다. “아, 글을 모르신다고요? 그럼 제가 당뇨 식단과 교육자료를 드려도 읽으실 수가 없겠군요.” “글 배우고 싶은데….”

70세가 넘도록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상태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주치의인 나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으셨던 걸까. 진료시간이 교육시간보다 짧으니 그 시간 안에 충분히 본인 얘기를 하지 못하셨던 걸까.

할머니가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하신다는 말을 전해 들은 나는 한글 문해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다른 주민분(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을 떠올렸다. 그분께 어르신을 위한 한글교실을 운영하는 곳이 있는지 문의했다. 살림의원 데스크에 있는 사회복지사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 은평구 내에서 어르신이 들으실 만한 한글교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근처 노인복지관에서 며칠 후 시작되는 한글기초반에 잘 등록할 수 있었다.

할머니의 체중은 87㎏에서 73㎏까지 줄었고, 혈당도 잘 조절되어 당화혈색소 8.6에서 6.8이 되었다. 물론 글을 읽게 되었다고 혈당과 체중이 자연히 줄어든 건 아니고, 당뇨약도 바꾸고 식단도 바꿨다. 이제는 아들 약과 손녀 약의 어려운 외국어 이름도 제대로 읽으실 줄 알고, 식구들에게 이런저런 오지랖 섞인 간섭도 하기 시작하셨으며, 한글교실 다른 할머니들과도 친교가 생겨 사회활동 영역을 넓히셨다. 나는 이것을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다학제 팀진료의 성과라고 부른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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