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현상은 ‘파괴적 혁신’과 ‘창조적 파괴’라는 경제학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파괴적 혁신은 미국의 경영학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제시한 개념이다. 혁신에는 ‘존속적 혁신’과 ‘파괴적 혁신’이 있다. 존속적 혁신은 기존 제품과 서비스를 점차 개선해 더 나은 성능을 원하는 고객에게 높은 가격에 파는 전략이다. 파괴적 혁신은 단순하고 저렴한 제품 또는 서비스로 시장 밑바닥을 공략해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시장을 장악하는 전략이다. ‘창조적 파괴’를 주창한 이는 조지프 슘페터였다. 기술혁신을 통해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경제구조를 혁신한다는 게 골자다. 혁신을 통한 자본주의 경제의 역동성을 강조한 이론이다. 두 이론은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구시대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혁신은 국민의 요구이자 역사의 발전과정이다.
여권에 대한 민심이반과 이준석 현상은 혁신의 차이가 부른 결과다. 늘 반 발짝 앞서가는 대기업은 평시에는 어려움 없이 수익을 창출하지만 제4의 물결 같은 격변의 파고를 넘기는 쉽지 않다. 위기의 순간에 경쟁우위를 과신해 기존 전략을 고집한다. 기득권의 관성으로 혁신에 실패하는 이유다. 중저가 핸드폰으로 글로벌 시장을 석권했던 노키아가 대표적이다. 스마트폰을 준비해야 한다는 내부보고서를 무시하고 기존 전략을 고수했다. 그러다 삼성과 애플의 스마트폰 출시 한 방에 무너졌다.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우량주로 존속적 혁신 세력이다. 야당이 워낙 존재감이 없다 보니 조금만 개혁적 모습을 보여도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공들이지 않고도 전국 선거서 4연승했다. 20년 집권론을 꺼낼 정도로 오만해졌다. 민심이 돌아서는 여러 징후에도 기존 전략을 고수하다 서울·부산시장 선거서 참패했다. 진정한 자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종부세 기준 완화 등 원칙도 없는 민심 수습용 임기응변에만 급급하고 있다.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다. 친문은 여전히 건재하다. 점진적 개혁으로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낙관론에 빠져 있다.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
거꾸로 열등주 국민의힘의 반전 스토리는 혁신이론 그대로다. 탄핵세력으로 낙인찍힌 국민의힘은 난파선이었다. 여러 차례 당명을 바꿔봤지만 허사였다. 지난 4년 동안 지지율은 바닥이었다. 선거선 연전연패했다. 사실상 재기불능 상태였다. 21대 국회는 민주당 1당 국회나 다름없다. 임대차보호법 등 주요 쟁점 법안의 민주당 단독 처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존재감도 없고 무기력했다. 대안정당은 꿈도 꾸지 못했다. 처절한 반성과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호소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영입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김 전 위원장은 보수세력의 역사적 과오부터 정리했다. 박근혜 탄핵사태에 대해 고개를 숙였고, 광주 5·18민주묘지를 찾아 무릎 꿇고 사과했다. 불행한 과거와의 단절을 위한 자기 부정이었다.
이런 파괴적 혁신은 선거 승리와 이준석의 등장을 가능케 했다. 재기를 모색해온 국민의힘에 기회를 준 건 여권이었다. 독주와 오만으로 민심이 돌아서면서 틈새가 생겼다. 여권은 조국사태로 내로남불의 표적이 됐다. 부동산 정책 실패는 돌아선 민심에 불을 질렀다. 야당의 선거 압승은 실력보다는 여당의 헛발질이 결정타였다. 여당의 추락은 야당엔 기회다. 틈새 공략으로 일거에 시장을 주도하는 모양새다. 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 청년 이준석을 대표로 선출한 것은 새로운 정치질서를 주도하기 위한 창조적 파괴의 신호탄이었다. 정치권 세대교체 열망에 정권 교체를 바라는 보수민심의 전략적 선택이 더해진 결과다.
이준석의 등장으로 정치혁명은 시작됐다. 운동권 86그룹 중심의 정치권 세대교체를 넘어 공정과 정의라는 시대의 화두를 앞세운 2030 중심의 시대교체 의미가 담겨 있다. 수직적 위계질서는 수평적 리더십에 밀려날 것이다. 이준석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변화의 바람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당장 내년 대선은 공정과 정의의 시대정신을 앞세운 혁신 경쟁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이기는 세력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이다. 돈과 조직은 큰 변수가 아니다. 시대정신을 담아 국민과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하는 사람이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이다. lee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