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상담소] 상처를 받고 용서를 하기까지

입력 2021-07-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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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우 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 회장·지역사회전환시설 우리마을 시설장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클라이언트가 있었다. 그는 나의 아침 인사에 답하는 대신, 격양된 어조로 자신이 친구들로부터 따돌림당했던 오랜 기억의 조각을 시시때때로 이야기하곤 하였다. 그 시절 얼마나 아팠으면 수십 년이 지나서도 저렇게 떠올리며 힘들어하는 것일까.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았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오래도록 증오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증오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남아 있다가 연관된 사건과 기억으로 불쑥 타오른다. 상처가 시간 속에 고이 묻히지 못하면 언제든 현재의 생활로 다시 솟아올라 쓰라린 고통을 준다. 더 심하면 이 클라이언트처럼 트라우마가 인생을 압도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상담가는 치유의 방법으로 상처의 자리에, 분노를 표출하게 하고 애도할 수 있도록 응급처치를 한다. 그리고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가면서 인정, 수용, 그리고 용서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나 역시 군 생활을 하면서 한 선임에게 무시와 조롱의 상처를 받았었다. 상처는 점점 부풀어 올라 그에 대한 증오까지 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피엑스 공중전화기 앞에 줄을 서 있었고, 내 앞에는 그 선임이 먼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선임의 수화기에서는 한 여성의 가냘픈 음성이 들렸다. 얼마 안 남은 전역까지 부디 몸조심하라는 걱정 어린 선임의 어머니 목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나중에 누군가에게서 듣게 되었다. 선임이 아픈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입대를 했다는 사실을. 내가 증오하는 그 인간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었음을 인정하니 나의 증오도 조금은 가라앉는 듯하였다. 그렇다고 그 선임을 용서하지는 않았다. 다만 흐르는 시간 속에 묻어두었을 뿐. 나의 아버지는 고령이고 치매와 당뇨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부쩍 야위어진 아버지를 볼 때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오른다. 할머니의 소중한 아들, 그리고 내 아버지의 현재, 그것을 수용하게 된다. 아버지가 더 애처롭게 보인다.

인간관계의 얽히고설킴,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갈등과 상처는 결국 본질적인 인간의 모습을 관조하게 되면서 조금씩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상처를 주었던 그가 아무리 미운 인간이라고 해도, 그 역시 누군가로부터 태어났을 뿐이고 결국엔 죽게 되는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지난날의 상처를 조금은 더 성숙하게 수용할 수 있게 되고 마지막에 용서가 남는다. 상처를 준 그 사람은 나의 용서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용서는 상처받은 나 자신의 평온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 나만의 선택으로 남겨진다.

황정우 지역사회전환시설 우리마을 시설장·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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