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

입력 2021-07-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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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그녀)가 A4 용지 한 장을 받아들었다. 브리핑 내용을 확인한 후 카메라 앞에서 양손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발표자가 내뱉는 단어, 문장을 정확히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재빠른 손동작이다. 서울시청에서 매일 열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온라인 브리핑에서 수어 통역사들의 일상이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해나가는 사람들 덕에 우리 사회는 질서를 유지한 채 순행한다. 입주민이 경비원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갑질이나 근로 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건을 접할 때면 공감하고 분노한다.

시민들은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한,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과도 연대하지만 정작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곳'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달 29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01회 정례회 시정ㆍ교육행정 시정질문 현장이 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행정자치위원회 소속 A 시의원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윽박지르며 제대로 된 답변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A 시의원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교육플랫폼 '서울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오 시장을 향해 "'진료는 누구에게(의사에게), 약은 누구에게(약사), 공부는?"이라고 퀴즈를 냈다. 자신이 낸 문제를 맞히면 추가 질문은 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이를 보고 있던 시의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질문 중엔 언성까지 높였고 대답은 듣지도 않았다. 오 시장은 "제가 말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이라고 요청했지만 묵살했다.

시의회는 서울시의 상급 기관이 아니다.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수평적인 관계일 뿐이다.

오 시장이 추진하는 사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이의를 제기하고 수정할 것을 요구하면 된다. 예산을 삭감하는 등 의결권을 행사해 의사를 표시하는 방법도 있다. 시장을 조롱하고 윽박지르는 것은 시민들이 기대하는 의회의 모습이 아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봤을 법한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왕자’에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명대사가 나온다. 유권자들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일을 묵묵히 해내는 그들은 중요한 순간, 중요한 선택으로 역사의 방향타를 결정했다. 내년 선거에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정치인이 되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 눈치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서울시 행정을 감시하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것은 유행이 한참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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