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프리즘] 셀럽들의 기부행렬과 기업 ESG

입력 2021-07-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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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전 에스케이 사장

지난 5월 가수 겸 배우 아이유가 자신의 마지막 20대 생일을 맞아 5억 원을 기부했다. 6월에는 가수 임영웅의 생일을 기해 그의 팬클럽 ‘영웅시대’가 릴레이 기부를 펼쳤다. 그런가 하면 MBC의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는 ‘환불 원정대’, ‘싹쓰리’의 음원 수익 약 17억 원을 모두 기부하기도 했다.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다짐받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바람이 불어오듯 셀럽(유명인)들의 선한 영향력을 사회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팬덤 기부’ 바람 역시 강하게 불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팬덤 기부 사례는 언론에 보도된 것만 최소 23건에 달했다고 한다. 이제 셀럽들의 기부활동은 재미와 즐거움을 넘어 사회를 바꾸는 시민운동으로 스타와 팬을 공생의 파트너로 맺어주고 있다. 사회적 갈등과 충돌이 극심한 우리 나라에서 셀럽들의 기부활동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셀럽들의 기부는 비영리공익법인(NPO)의 사업과 연계되어 빛을 발한다. 아이유의 기부금은 희귀질환 아동 및 한부모 가정, 홀몸 노인들을 돌보고 있는 6개의 NPO에 배정됐다. 영웅시대는 임영웅의 출생지인 포천의 보육시설,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어린이를 응원하기 위한 성금을 기부처로 보냈다. MBC의 ‘놀면 뭐하니’ 팀에서도 총 10개의 공익법인에 각 1억 원 이상의 금액을 기부했다.

그런데 아이유로부터 기부금을 받은 단체 중 한 곳은 고용직원 수가 0명, 인건비 역시 0원으로 공시되었다. 직원도 없이 1억 원이 넘는 기부금을 운용하겠다는 얘기다. 영웅시대의 기부금 수령단체 중 한 곳은 자동이체 및 산하기관에 기부금품 전액을 소진하기도 했다. 공익법인은 기부금품 사용 내역에 대해 지급처, 지출 목적,수혜 인원 및 금액을 성실하게 작성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2천만 원 이상의 후원금에 대해서는 기부자 명단을 작성해야 한다. MBC ‘놀면 뭐하니’의 기부금을 받은 곳 중 여러 개의 법인은 출연자 명단을 작성하지 않았고 MBC의 후원 역시 표기되지 못했다. 외부 회계감사를 받지 않은 곳도 많았다. 지난해 정의기억연대도 기부자 명단 누락, 수혜 인원의 편의적 작성 등의 지적을 받았는데 이는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큰 비용을 치렀고 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셀럽들의 기부가 특정 공익법인의 사업수행 비용으로만 쓰인다면 그 취지가 너무나 제한적이고 아쉽다. 이들의 선한 영향력으로 비영리 분야 공통의 과제까지 해결되게 할 수는 없을까? 충분히 가능하다. 셀럽들이 기부의 대상인 NPO를 선정할 때 이들의 사업내용에 더해 투명성이 어느 정도인지 점검하고 기준으로 삼아 준다면 비영리 분야 전체가 바뀔 수 있다. 공익법인들의 기부금 유용이나 투명성 결여가 우리 국민들이 기부를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조사결과도 많다. 셀럽들의 기부로 비영리 분야의 투명성이 제고된다면 이는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를 바꾸고 우리를 기부 선진국으로 이끄는, 선한 영향력의 완결판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

ESG가 트렌드로 정착한 기업의 세계에서도 기부의 투명성은 중요하다. 특히 S(사회적 책임)의 구현에 있어서 사업수행 파트너인 NPO와 투명성을 매개로 파트너십을 형성한다면 그 가치가 더 빛날 수 있다. 맑은 하늘에 별빛이 더 빛나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기업재단은 투명성의 사각지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8년 발표한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 165개 중 단 3곳만이 한국가이드스타의 투명성 평가를 받았다. 내 돈으로 기부했기에 내 맘대로 쓸 수 있다는 생각이 평가 배제의 배경이다. 그러나 기업은 공익법인에 기부하면서 비과세의 혜택을 받는다. 결국 출연금이나 기부금은 국가의 혜택을 받은 공공의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투명성 검증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조세정의에 부합한다. 더욱이 기업재단은 오너가 직접 이사장을 겸하는 경우가 많기에 투명성에 대한 더욱 각별한 관심을 요한다. 어렵지도 않다. 법에 명시된 대로 공시하고 외부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은 다음 객관적인 제3의 기관에 의뢰해 투명성 평가를 받으면 된다. 이 단순한 과정을 생략하면서 우리 사회는 너무나 큰 갈등을 빚었고 많은 비용을 치러야만 했다. 기업도 예외일 수 없었다. 투명성이 결여된 미르, K스포츠 재단에 대한 기부로 기업 회장들이 얼마나 큰 시련을 겪었나.

지난해 작고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생전에 “기업 2류, 행정 3류, 정치 4류” 발언을 남겼다. 그는 고초를 겪었지만 국민들은 십분 공감했다. 그런데 K팝, K무비로 대표되는 대중문화가 어느새 세계 정상에 올라 기업과 함께 한국을 선진국으로 견인하고 있다. 기업에 ESG가 있다면 셀럽에게는 선한 영향력이 있다. 이들이 노력한다면 세계 81위인 한국의 기부 수준은 경제 수준인 10위권으로 성큼 올라갈 수 있다. 그 핵심은 투명성의 확보이고 해법은 이미 알려져 있다. 경제와 문화를 아우르는 기부 선진국으로서의 한국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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