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거리두기 4단계'가 바꾼 도시의 어제와 오늘

입력 2021-07-13 11:01 수정 2021-07-1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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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이후 사실상 영업 중단한 음식점ㆍ"왜 모든 피해 짊어져야 하나" 울분 터뜨리는 상인… "둠스데이" 락다운 전날 붐빈 젊음의 거리 '홍대'

도시가 모습을 바꾸는 데 필요한 시간은 하룻밤에 불과했다.

이투데이는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적용된 12일과 락다운 전날인 11일 저녁 오피스 지구와 대학가, 재래시장을 찾았다. 12일부터 오후 6시 이후 사적 모임은 ‘2명’까지만 허용된다. ‘14일간의 멈춤’은 시작됐고, 발길이 끊긴 도시의 밤은 확연히 달라졌다.

거리두기 4단계 전날까지 여전히 붐빈 서현역 오피스 지구… 12일 저녁 되자 손님 발길 '뚝' 끊겨

▲11일 오후 6시께 분당 서현역 앞 대로변의 모습. 락다운 하루 전날임에도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안경무 기자 noglasses@)
▲11일 오후 6시께 분당 서현역 앞 대로변의 모습. 락다운 하루 전날임에도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안경무 기자 noglasses@)

‘락다운’ 전날인 11일 일요일 오후 3시 분당구 서현역 인근의 한 스타벅스. 오피스와 주거단지가 공존하는 이곳은 항상 인파로 북적인다.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것은 입구까지 늘어선 긴 줄이다. 서른 평 가량의 매장엔 손님이 스물다섯 명이 넘었다. 일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000명을 훌쩍 넘겼지만, 사람으로 가득한 매장에서 ‘테이블 간 이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하철역에서도 거리두기 4단계는 실감 나지 않았다. ‘만남의 장소’로 꼽히는 AK플라자 분당점 1층 시계탑 앞엔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이동한다. 인근 다이소 매장의 계산대도 바코드 찍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하루 뒤인 12일 찾은 서현역은 전날과 사뭇 달랐다. 스타벅스는 어제와 같은 시간이지만 줄을 서지 않고 주문이 가능할 정도다.

식당가는 침울하다. 이날 오후 6시경 역 인근에 상가 지하 1층에 자리한 참치 전문점을 찾았다. 참치집에서 으레 들릴만한 잔을 부딪히는 소리도, 이야깃소리도 없이 정적만 흐른다. 기자를 손님으로 착각한 점원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다 “기자”라고 밝히니 금세 표정이 어두워진다.

‘4단계 격상 피해가 있냐’고 물으니 “보시다시피 아무도 없다”며 “오후 4시 30분쯤 한 팀이 왔는데, 5시 55분이 되자 딱 나가버렸다”고 말했다. 이 점포는 4시 30분부터 저녁 장사를 시작한다. 주방에서 나온 가게 사장은 “이곳은 원래 평일 저녁 장사가 메인”이라며 “저녁은 매출이 없고, 점심은 회덮밥 등을 파는데 지난주와 비교하면 매출이 70% 정도 줄어든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근처 국밥집에선 주인의 까칠한 태도가 상황을 대변한다. “어제랑 비교하면 장사가 좀 어떻냐”고 묻자 “바쁘다”며 답변을 피한다.


"셋 안되면 둘이서 보면 된다" '둠스데이' 앞두고 홍대 거리로 나온 사람들… 단속반 발걸음은 빨라진다

▲11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인근의 모습. 오후 6시 이후 2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를 앞두고 사람들은 거리로 나왔다.  (김혜지 기자 heyji@)
▲11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인근의 모습. 오후 6시 이후 2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를 앞두고 사람들은 거리로 나왔다. (김혜지 기자 heyji@)

“어서 오세요!” 11일 오후 9시 서울 홍대 경의선 숲길 인근 한 치킨집. 길목에서 산책하던 연인이 들어서자 종업원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8개 테이블이 놓인 야외 테라스는 대부분 만석이다.

사상 초유의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적용 방침을 앞둔 11일 서울 홍대일대는 축제 전야제를 방불케 한다.

◇홍대 거리는 연인들만=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적용 방침을 앞둔 11일 서울 홍대일대는 축제 전야제를 방불케 한다.

서울 홍대일대는 매장 내 가림막이 설치되고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것을 제외하고는 보통의 홍대와 다를 바 없는 분위기다. 주점, 펍 등에서 맥주, 칵테일잔이 부딪히는 소리, 기분 좋게 술에 취한 시민들의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테이크아웃 과일 주스 매장 앞에서는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벤치에서는 연인들이 ‘턱스크’ 한 채 주문한 음료를 마신다.

대학 친구 세 명과 함께한 20대 남성 김 모씨는 “거리두기 전날이라 오늘이 ‘둠스데이(최후의 날)’처럼 느껴졌다”라면서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마지막 날 아니냐”고 말했다.

오후 9시 50분 매장문을 닫을 시간이 가까워 오자 경의선 숲길 공원으로 사람들이 쏟아져나온다. 공원 곳곳에선 빨간봉을 든 ‘단속반’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공원내 음주 등 일탈 행위’를 막기 위해 서부공원녹지사업소, 자율방범대 등이 단속에 나선 것이다. 실제 오후 10시 이후 음주는 원천 금지다.

홍대의 풍경은 4단계 적용 첫날이 되자 두 명씩 짝지은 친구, 연인들만이 거리를 채웠다.

단속반의 발걸음도 분주해졌다. 한 단속반 관계자는 “그래도 지금은 인원이 적은 편”이라며 “거리두기 격상 전에는 공원 내에 300명 가량이 술을 마시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했다.

인근 자영업자들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경의선 숲길 인근 지난해 초 편의점 문을 연 점주 A씨는 “인수할 때만 해도 코로나가 가을 겨울이면 끝날 줄 알았다”라면서 “길목이 길목이다 보니 술이 제일 많이 팔리지 않겠나. 월 매출이 3분의 1토막이 났다”고 하소연한다. ‘거리두기 4단계’가 적용된 홍대엔 들끓는 젊음과 무거운 현실이 공존하고 있었다.

"코로나 급증 내 탓도 아닌데 왜 모든 짐 짊어져야 하나… 너도나도 폐업할 것" 울분 토로하는 재래시장 상인

▲11일 오후 6시 성남 은행시장 거리 (윤기쁨 기자 modest12@)
▲11일 오후 6시 성남 은행시장 거리 (윤기쁨 기자 modest12@)

재래시장의 4단계 격상 전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격상을 하루 앞둔 11일 오후 6시, 성남 은행시장과 송파 가락시장에는 주말을 맞아 장을 보러 온 시민들이 점포 앞을 서성인다. 상인들은 낯선 기자의 방문에 불안한지 마스크를 연신 콧등 위로 추켜올리면서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은행시장에서 의류를 판매하는 C씨는 “지난해에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소비하러 오는 손님들이 그나마 있었는데 올해는 그것조차 없어 힘들다”라며 “코로나19로 빚만 늘어서 힘든데 격상까지 하면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 자체가 없어진다는 얘기 아니냐”며 울분을 터트렸다.

이어 “그나마 일요일이라서 사람들이 이 정도 있는 거지 내일부터가 걱정이다”라며 “몇몇 점포는 장사를 당분간 쉰다고 하는데 생계가 걸려있어 쉽지 않다”고 했다.

가락시장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D씨는 “얼마 전까지 (거리두기가) 완화된다고 해서 기대했었는데 갑작스럽게 4단계로 올라가서 당황스럽다”라면서도 “모두가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잘 지나가길 막연히 기다리고 있다”며 체념에 가까운 한숨만 내쉬었다.

▲12일 오후 6시 성남 은행시장 거리 (윤기쁨 기자 modest12@)
▲12일 오후 6시 성남 은행시장 거리 (윤기쁨 기자 modest12@)

12일 같은 시각. 은행시장과 가락시장은 전날보다 현저히 방문객이 줄었다. 한산한 골목에 간간이 행인이 지나갈 때면 상인들은 적극적으로 “둘러보고 가라”며 호객행위를 한다.

은행시장 과일노점 주인 C씨는 “지금까지 손님 두 세분 온 거 같은데 그마저도 2개 살 거 한 개씩만 사간다”라며 “날도 끔찍하게 더운데 아무리 기다려도 손님은 더 오지 않을 것 같아 일찍 정리하고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며 매장을 정리한다.

가락시장 채소상회 상인 D씨는 “나는 백신도 맞았고 장사에 문제없게끔 최선을 다했다”라며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게 내 탓도 아닌데 왜 모든 피해를 짊어져야하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이어 “이러다 너도나도 다 폐업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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