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대출 상환 미뤄야” vs. 은행권 “더 유예해도 갚을 여력 있나”

입력 2021-07-13 18:00 수정 2021-07-1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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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에서 기계 부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소기업 A사는 지난해부터 제조장비 유지와 인건비, 창고 임대료 등을 내기 위해 대출을 두 번 받았다. 대표 김 모(64) 씨는 “요새 코로나19와 주 52시간제 때문에 돈 들어갈 일이 많아졌는데 정작 돈은 없다”며 “그렇다고 이미 ‘풀’로 받은 대출을 더 받을 길도 없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구체적인 대출 금액을 밝히기 어렵다면서도 “받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자만 겨우 댈 정도였던 매출마저 소폭 감소해 대출을 더 받긴 힘들다. 수출길이 막힌 데다, 이탈하겠단 직원까지 나온 상황에서 김 씨는 “내 주머니 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고 말했다.

13일 이투데이 취재 결과 중소기업 자금 사정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중기연)에 따르면 5월 중소기업 자금 사정 SBHI는 78.5로 전월 대비 0.7포인트 내렸다. 같은 기간 예금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은 842조9000억 원으로 0.8% 늘었고, 이중 개인사업자 대출은 402조2000억 원을 기록했다. 전체 대비 47.72% 규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유행에 주 52시간제 시행, 원자잿값 상승 등 대외적 요인까지 닥친 영향이다.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에 따르면 현재 자금 사정에 대해 ‘나쁘다’고 답한 중소기업이 전체 500곳 중 27.6%로 나타났다. 이들은 자금 사정 악화의 이유로 ‘매출액 감소(81.2%)’와 ‘원자재 가격 상승(51.4%)’, ‘인건비 부담(38.4%)’ 등을 들었다.

돈 줄기가 막힌 상황인 만큼 중소기업계는 악화한 자금 사정을 고려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기중앙회의 같은 조사에서 중소기업들은 자금 조달 시 겪은 애로사항으로 대출금리 인상(24.2%), 대출금 일부 상환 요구(12.6%) 등을 꼽았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중소기업의 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안 그래도 중소기업의 대출금이 쌓인 상황에서 급하게 대출금을 회수해버리면 멀쩡하던 기업도 부도가 난다”며 “지금까지 총 세 번 대출 만기를 연장했는데, 이를 일시에 갚으라고 해도 중소기업은 여력이 없다”고 호소했다.

은행들은 코로나19 상황이 엄중한 만큼 대출 원금 상환 만기 연장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이자 상환마저 유예하는 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이자를 내는지 또는 못 내는지로 차주의 부실을 파악하는데 이자 상환을 미루면 이를 파악할 수 없단 것이다.

지난달 기준 전 금융권의 대출 만기연장과 이자상환유예 지원금액은 204조2000억 원이다. 이 중 만기연장은 204조 원, 이자상환유예는 2000억 원 수준이다.

특히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2~3%대로 대출 이자 부담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이마저 못 내는 기업은 정리해야 한단 의견도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 대출 이자도 못 낸다는 건 심각하게 사업성이 손상된 것”이라며 “현재는 금융 지원 때문에 이런 차주의 대출이 정상 여신으로 분류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부실이 가려지는 현상이 누적되고 이것이 한순간에 터지면 리스크가 크다”며 “이자 유예 조치를 풀어 한계 차주를 차근차근 정리해가는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일주일 연속해서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을 넘자 대출 만기와 이자 상환 유예 논의는 다시 물살을 타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7월이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최근 코로나 19 확산세가 커지고 있다“며 ”(대출 만기와 이자 상환 유예 조치는) 앞으로의 방역이 어떻게 되는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금융당국의 수장이 재차 대출 만기와 이자 상환 유예 조치의 연장 가능성을 열어두자 전문가들은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출 만기 연장을 하더라도 (차주) 실사를 해서 그동안 입은 데미지, 영업 손실, 코로나19가 끝나면 회복이 가능한 건지 등을 파악하고 내줘야 한다”며 “만기 연장을 계속해주지 않으면 빚을 못 갚는 사람이라면 (시간을) 끌어봐야 결국 빚”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고 금융 부실화에 대한 우려도 커진 만큼 중소기업계도 면밀한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다음 달 중으로 현장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실태조사도 진행한다.

추 본부장은 “거리두기 단계가 4단계로 올라가는 등 전엔 이런 적이 없었으니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고 백신 보급률이 높아지면 중소기업 자금 사정과 관련해 어떤 연착륙 방안이 필요할지, 현장 의견을 반영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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