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인터뷰] "GM은 회장님부터 여성 엔지니어 출신이에요”

입력 2021-07-15 13:00 수정 2021-07-1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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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희 'GM 테크니컬센터 코리아' 차량설계실장

2차 세계대전은 전 세계 제조업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 기업은 대량생산에 매달렸고, 소비재는 기능과 내구성에 집중했다.

남성들이 전쟁터에 내몰렸던 이때, 전쟁 물자 생산은 여성의 몫이었다. 단순 제조공정의 노동자였던 여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고도화된 연구개발 분야까지 영역을 넓혔다. 산업계에 본격적인 여성 엔지니어가 등장한 시기였다.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여성 엔지니어의 역할론이 커졌다. 기하학과 수학에 뛰어났던 이들은 훗날 냉전시대 우주개발 경쟁에서도 독보적인 성과를 일궈냈다. 그 중심에 글로벌 비영리 여성 엔지니어 단체 'SWE'가 존재한다.  (출처=SWE.org)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여성 엔지니어의 역할론이 커졌다. 기하학과 수학에 뛰어났던 이들은 훗날 냉전시대 우주개발 경쟁에서도 독보적인 성과를 일궈냈다. 그 중심에 글로벌 비영리 여성 엔지니어 단체 'SWE'가 존재한다. (출처=SWE.org)

◇1950년 美서 비영리 여성 엔지니어 단체 출범

각자의 자리에서 존재의 당위성을 키우기 시작한 여성 엔지니어들은 마침내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50년 5월, 미국 여성 엔지니어들을 중심으로 한 비영리 단체 ‘SWE(Society of Woman Engineerㆍ여성공학회)’가 출범한다. 네트워킹 확대와 여성 엔지니어의 활동 장려, 연구개발 역량 강화 등이 목적이었다.

여성 엔지니어는 기하학과 역학, 특히 수학적 능력이 남달랐다.

훗날, 미국과 소련이 치열한 우주개발 경쟁을 벌일 때 여성 엔지니어의 능력과 가치가 빛났다. 이들은 20세기 정밀 공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주인공이기도 하다. 기회가 없었을 뿐, 역량이 모자란 게 아니었다.

그렇게 SWE가 출범한 지 70년이 흘렀다. 그사이 산업혁명을 거쳤고 여성의 인권도 향상했다.

SWE 역시 전 세계 62개국으로 조직을 확대했다. 정회원 규모만 4만2000명에 달하는 글로벌 조직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 여성 엔지니어를 대표하는 집단지성이 된 셈이다.

지난해 11월, 마침내 한국에서도 SWE 한국이 결성됐다. 한국GM과 LG전자, HP 프린팅 등에서 활동해온 여성 엔지니어들이 주축이 됐다.

▲SWE는 70년 만에 62개국 약 4만2000명의 정회원을 거느린, 대표적인 여성 엔지니어 단체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1월 한국지엠을 중심으로 SWE 한국이 출범했다.   (사진제공=한국지엠)
▲SWE는 70년 만에 62개국 약 4만2000명의 정회원을 거느린, 대표적인 여성 엔지니어 단체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1월 한국지엠을 중심으로 SWE 한국이 출범했다. (사진제공=한국지엠)

◇한국지엠과 LG전자 중심으로 'SWE 한국' 조직

SWE 한국의 중심에는 ‘지엠 테크니컬센터 코리아(GMTCK)가 존재한다. 한국지엠은 물론 글로벌 GM의 전략 차종을 개발하는 핵심 연구개발 기지다.

GMTCK 차량설계실의 책임을 맡은 조은희 실장 역시 SWE 한국을 대표하는 엔지니어다.

올해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지 25년째. 자동차 회사에서 여성 엔지니어는 어떤 일을 할까. 조직 내에 여성 엔지니어는 얼마나 될까. 갖가지 궁금증을 가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SWE 한국의 정식 회원이자 '지엠(GM)테크니컬센터 코리아'의 차량설계실 책임을 맡고 있는 조은희 실장. GMTCK 최초의 여성 실장이다.   (사진제공=한국지엠)
▲SWE 한국의 정식 회원이자 '지엠(GM)테크니컬센터 코리아'의 차량설계실 책임을 맡고 있는 조은희 실장. GMTCK 최초의 여성 실장이다. (사진제공=한국지엠)

▲'지엠 테크니컬센터'에서 담당하는 업무는 무엇인가요.

=한국지엠은 물론 글로벌 GM의 신차 설계 업무를 주도하고 있어요. 개발 중인 전 차종의 설계를 진행하는 일인데, 차량설계실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만 150명이 넘습니다. 구체적으로 개발 중인 신차의 ‘컴퓨터 디자인 데이터(CAD data)’를 만든다고 보면 돼요.

▲여성으로서 차 회사에서 오래 근무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나요?

=‘차(車) 회사는 남자의 영역’이라는 건 '남녀 성비 차이'가 만든 편견이에요. 여성의 역량이 모자라서 남성 중심의 산업이 된 것은 아니잖아요. 지금까지 열정적으로 일하게 만든 동력은 ‘성취감’입니다.

▲차를 개발하면서 느끼는 성취감은 어떤 것인지요?

=모든 직업마다 성취감이 있죠. 그런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측면에서 자동차 엔지니어만이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이 남다릅니다. 내가 개발한 차가 여기저기 도로를 달린다고 생각해보세요.

개발 단계마다 느끼는 성취감도 커요. 예를 들어 신차 개발 때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내가 내놓은 대안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고, 또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걸 보면 보람을 느낄 때가 많아요. 게임을 할 때 레벨이 올라가는 그런 기분과 비슷합니다. 짜릿해요.

▲글로벌 GM은 이름 그대로 다국적 기업이다. 여러 인종과 세대, 성별이 모여,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면서 하나의 자동차를 만든다. 조 실장은 "다양성과 이를 인정하는 포용성이 한국지엠에도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제공=한국지엠)
▲글로벌 GM은 이름 그대로 다국적 기업이다. 여러 인종과 세대, 성별이 모여,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면서 하나의 자동차를 만든다. 조 실장은 "다양성과 이를 인정하는 포용성이 한국지엠에도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제공=한국지엠)

▲‘여성’이라는 편견을 깨트린 사례가 있나요?

=작년에 회사에서 “설계 역량을 강화하라”라는 미션(Mission)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차량설계실’ 책임을 맡게 됐습니다.

물론 내부에서 회의적인 반응도 없지 않았어요. '여성 리더십'에 대한 기우였겠죠. 그런데 차량설계실이 생기고 1년 동안 성과도 꽤 나오니까 자신감이 커졌습니다.

새로 설계실에 합류한 엔지니어가 효과적으로 업무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었어요. 누구든 합류하면 곧바로 실무에 뛰어들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이죠.

조직 내부에서도 “충격적” 또는 “파격”이란 반응도 있었는데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상당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까 회사에서 차량설계실 책임을 맡길 때도 "스스럼없이 도전한다"라는 제 성격까지 고려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조 실장은 신차 개발과정에서 차량 설계를 책임진다. 한국지엠의 글로벌 전략 소형 SUV인 트레일블레이저 역시 조 실장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사진제공=한국지엠)
▲조 실장은 신차 개발과정에서 차량 설계를 책임진다. 한국지엠의 글로벌 전략 소형 SUV인 트레일블레이저 역시 조 실장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사진제공=한국지엠)

▲현재 연구소(GMTCK)에서 여성의 역할론은 어느 수준인가요.

=GM의 한국 사업장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여성의 역할론이 커지고 있어요. 미국 본사는 물론, 글로벌 주요 연구소마다 여성 엔지니어 출신 고위급 임원이 꽤 있거든요.

글로벌 GM에는 이를 활용한 멘토링이나 인재 육성 프로그램이 있어요. 미국 본사의 여성 부사장님과 정기적 멘토링을 할 기회가 있는데요. 저는 그 시간을 통해 업무상 고민을 이야기하거나 개발과 관련해 조언을 듣고 있습니다. 기대 이상으로 꽤 도움이 됩니다.

저도 여성 엔지니어로서 모범적인 리더십을 가져간다면, "후배들의 롤 모델이 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GM 전체적으로 여성의 역할이나 위상은 어떤가요.

=GM은 최고경영자(CEO)부터 엔지니어 출신 여성(메리 바라 회장)이에요. 글로벌 자동차업계 최초잖아요. 메리 바라 CEO를 포함해 GM 본사에 많은 여성 임원이 활동 중입니다.

또 다국적 기업이잖아요. 여러 인종과 세대가 모였고,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면서 하나의 자동차를 만듭니다. 그러다 보니 ‘포용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문화가 있어요.

한국지엠이나 우리 연구소도 글로벌 GM 본사의 ‘포용성과 다양성’에 대한 기본 가치가 그대로 존재해요. SWE 가입이 대표적인 활동이에요.

▲SWE 한국은 2020년 11월 출범했다. GMTCK를 주축으로 LG전자와 HP 등의 한국 여성 엔지니어들이 뜻을 함께 했다.  (사진제공=한국지엠)
▲SWE 한국은 2020년 11월 출범했다. GMTCK를 주축으로 LG전자와 HP 등의 한국 여성 엔지니어들이 뜻을 함께 했다. (사진제공=한국지엠)

▲'SWE 한국'도 소개해 주세요.

=작년에 국내 여성 엔지니어들 몇몇이 모여 처음으로 SWE 한국을 출범했어요. 특히 회사에서도 많이 도와줬고요. SWE 활동을 하면서 ‘다름’에서 오는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거에요.

SWE 한국은 국내의 젊은 여성 공학도를 지원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대학생을 상대로 만든 ‘SWE 스쿨 아카데미’가 있는데요. 여성 공학도가 미래의 꿈을 펼쳐 나갈 수 있게 ‘멘토링’을 포함한 다양한 지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성 엔지니어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 한 마디

=SWE와 회사의 다양성 위원회 활동을 통해 ‘다 함께 일하기 좋은 직장’이라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글로벌 GM이 추구하는 이런 가치에 자부심도 느끼고요. 한국에 있는 많은 여성 엔지니어들이 SWE를 통해 하나의 가치를 공유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은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많은 전문가가 이를 계기로 여성의 사회진출과 성장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요.

이제껏 걸림돌이었던 출산, 육아 등의 문제가 재택 또는 유연 근무제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자신감을 가지세요.

▲조은희 실장은 여성 엔지니어의 역할론 확대를 위해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조했다. 글로벌 GM의 모토이기도 하다.  (사진제공=한국지엠)
▲조은희 실장은 여성 엔지니어의 역할론 확대를 위해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조했다. 글로벌 GM의 모토이기도 하다. (사진제공=한국지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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