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완의 복지플랫폼 ] 돌봄 받는 이와 돌보는 이 모두를 위한 인권

입력 2021-07-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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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얼마 전 한 요양보호사가 80대 치매노인을 학대해온 사실이 CCTV 영상을 통해 폭로되어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마침 한 달 전인 6월 15일은 UN이 노인에 대한 부당한 처우 개선과 노인학대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지정한 ‘노인학대 예방의 날’이었다. 노인복지법에도 법정 기념일로 명시된 만큼 노인학대는 인권 차원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문제다.

혹시 믿을 수 있는 가족 아닌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에게 돌봄을 맡겨서 노인학대가 발생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노인학대 신고 1만6973건 중 학대로 판정된 건수는 총 6259건으로, 학대가 발생한 장소는 가정 내(88%)가 가장 많고, 노인요양시설 등에서 일어난 경우가 8.3%이다. 학대 행위자도 아들(34.2%), 배우자(31.7%), 노인복지시설 종사자(13%), 딸(8.8%) 순으로 나타났다. 바로 가정 내에서, 자녀와 배우자 등의 가족에 의해 일어나는 노인학대가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요양시설에서 신고조차 되지 않는 학대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타인 아닌 가족에 의한 학대의 현실은 우리가 몰랐던 노인 돌봄의 민낯이다.

최근 들어 노인학대를 조기 발견하고, 피해노인을 보호하는 노인학대 대응체계가 강화되고 있는 점은 다행스런 일이다. 노인학대를 발견하면 즉시 노인보호전문기관이나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하는 신고의무자 직군이 확대되었고, 노인복지시설 종사자 인권교육도 강화되었다. 6월 30일부터 시행된 개정 노인복지법에서는 학대행위자에게 상담과 교육, 심리적 치료를 제공하고, 학대 재발 여부를 확인하고 피해노인과 가족에게 사후관리를 강화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돌봄에 대한 사회의 포괄적 지원이 강화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노인돌봄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의 또다른 진실은 아직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사각지대로 방치되어 왔다. 폭언, 폭행, 성추행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돌봄노동자들의 인권 문제가 그것이다.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이 지난 3월에 실시한 전국의 요양보호사 5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근무 중 육체적, 정신적 상해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81.3%에 달했다. 서비스 이용자에게 욕설을 들은 경험이 83.7%, 성희롱 경험도 43.3%로 나타났다. 이용자의 보호자로부터 욕설이나 성희롱을 당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 노인장기요양보험 체계에서 서비스의 이용자에게 서비스 제공자가 당하는 인권침해는 본질적으로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 권력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이용자 선택권을 가진 이용자 측이 불안정 고용층인 돌봄노동자에게 행하는 갑질과 폭력인 것이다. 돌봄서비스 제공기관으로서 공공성을 가지면서도 영세한 민간사업장의 문제를 동시에 가진 장기요양기관들이 가진 모순적 문제이기도 하다.

우선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돌보는 어르신 혹은 그 가족으로부터 부당한 처우와 폭력적 행동을 당할 때 요양보호사가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과 보호장치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는 요양보호사가 수급자나 가족에게 폭언, 폭행, 상해 또는 성희롱·성폭력 등으로 인한 고충 해소를 요청하면 기관에서 업무 전환 등의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장기요양기관의 장은 해당 수급자 또는 수급자 가족과 상담을 실시해야 한다’고만 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조치는 규정되어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로는 돌봄노동자가 성폭력·성희롱 사실을 보호자와 기관에 보고해도 기관에서 어떤 대응도 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방 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는 장기요양기관장과 그 종사자는 인권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반면, 요양서비스 수급자에 대해서는 인권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고만 나와 있을 뿐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미 9년 전인 2012년 정부에 요양보호사의 인권개선을 권고했지만 아직까지 달라진 것이 없다.

노인 돌봄의 질을 높이고 싶다면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요양보호사의 인권 보장을 위해 구체적인 조치를 명시해야 한다. 돌봄의 공공적 성격을 고려할 때 국가와 요양기관 양자가 모두 요양보호사의 보호 주체가 되어야 한다. 요양보호사만 인권교육을 받을 것이 아니라 요양서비스 수급자와 그 가족도 필수적으로 인권교육을 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필요한 상황인 경우 2인 1조로 돌봄을 제공하게 하는 업무 구조도 도입되어야 한다. 보호 대상자의 인권과 돌봄 제공자의 노동인권은 동등하게 중요하다.

고령인구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돌봄 제공자, 특히 질 높은 돌봄서비스를 제공해 줄 좋은 인력은 턱없이 부족해질 것이고, 돌봄노동 환경이 열악할수록 좋은 인력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우리 부모님들이, 우리가 노후에 질 좋은 돌봄을 받기 원하는가? 지금 이 순간에 요양보호사들이 현장에서 부당하게 겪는 인권침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돌봄노동자의 기본적인 인권과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이 보장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보이지 않는 부메랑이 되어 우리 사회 돌봄서비스의 양과 질에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돌봄노동자, 더 나아가 모든 서비스 제공자들을 함부로 대해 온 잘못된 인식과 언행을 바로잡는 것이 복지국가의 질 좋은 서비스를 담보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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