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일에 관심 많던 20대 여름방학에는 열흘씩 농활을 갔다. 1980년대 농활은 논밭에서 피나 잡초를 뽑고 저녁에는 마을 청년들과 어울려 토론하고 마무리 잔치나 집회를 열었다. 저곡가 정책을 비판하고 농민과 노동자, 도시빈민들의 삶이 산업화와 자본이익에 어떻게 희생되고 있는지 토론하며 민중해방을 노래하며 막걸리잔을 기울였다. 1985년 당시 농민은 800만명으로 인구의 20%였고, 곡물자급률은 50%였다. 농촌 마을 청년회는 30대 형님들도 많고 대학생 언니 오빠들을 반겨준 아이들, 학생들도 많았다.
올해 농번기 농촌에서는 최악의 인력난을 겪고 있다. 지난달 마늘, 양파, 감자를 수확하고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되었는데, 일손을 구하지 못해 수확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인근 중소도시 중개업소에서 겨우 인력을 구하더라도 지난해 11만~12만 원이었던 일당은 16만~17만 원으로 뛰었고, 일부 지역에선 20만 원을 찍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농촌인력중개센터 확충, 도시형 인력중개센터 운영, 파견근로 시범 도입 등)들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상품경제에 편입해 성장을 도모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등 개발 전략은 주효하여 세계 10위권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선진국이 되었음을 세계가 공인하는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이는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고 농업과 농촌을 홀대하며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2019년 농가인구는 22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4.3%에 불과하며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47%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곡물자급률은 21%로 떨어졌다.
농업노동 투입상황을 살펴보면 가족노동이 여전히 많고(약 80%) 고용노동(약 15%), 자원봉사와 품앗이 등으로 나타나는데, 농번기인 봄(5~6월)과 가을(9~10월)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이미 우리 농업과 어업은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인데, 작물을 재배하는 농업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비중이 품목에 따라 노지 과수나 원예 15%선에서 시설특용작물 75%선에 이르고, 축산은 축종에 따라 50~98%에 이른다. 합법적인 농업부문 외국인 노동자는 고용허가제와 계절근로자제를 통해서 파악되지만 농어업 현장의 외국인 노동자 수는 등록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정확한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농업·농촌을 소홀히 하고, 농업 노동력마저 시장에 방치하는 정부와 사회가 지속될 수 있을까?
농업 노동력 수급은 코로나 위기와 함께 이주 계절노동자의 건강과 이동 문제로 더욱 악화되었다. 유럽의 경우도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지의 과일과 채소 생산이 이주 계절노동자에 의존하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이들이 위험에 노출되며 노동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제때 수확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체류 기간 연장, 유학생 취업 허용, 난민들에게 노동 허가, 노동자들의 농업노동 전환 유도, 계약된 이주노동자들에게 국경 통제 완화 등 시급한 정책들을 실시했다. 유럽 그린딜의 주요 전략인 ‘농장에서 식탁까지’ 정책에서는 코로나19 이후 건강하고 회복력이 높은 식품공급 시스템을 만들기 위하여 사회적 공정성을 강조하며, 계절근로자 처우 개선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내가 먹는 것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고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는 생명, 스스로 감당해야 할 먹거리를 소홀히 하고 외부에 의존하는 사회가 지속될 수 있을까? 직접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농업과 먹거리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소비자, 도시민은 이미 공동생산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