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시각] 버리기의 기술

입력 2021-07-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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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학 저술가

사람은 합법칙적인 물질세계에서 태어나 사랑하고 기도하며 여러 물건에 기대어 살아간다. 우리는 아침식사를 위해 전기밥솥을, 오븐이나 에어프라이를, 프라이팬을, 칼과 도마를, 포크와 나이프를, 컵과 접시들을 썼다. 이런 물질로 구성된 세계가 생명의 토대다. 우리 일생은 갖가지 물건과의 협업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삶의 전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많은 물건을 쓰고 버리며 산다. 더는 입지 않는 옷과 더는 신지 않는 신발, 다 쓴 화장품 용기들, 유행이 지난 물건들, 낡은 가구, 에너지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거나 고장 난 가전제품들을 내다 버린다.

우리는 날마다 무언가를 버리며 산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버렸는가? 당신이 버린 것의 목록을 얘기해 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버린 것들을 누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우리가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 일에 내다 버린 물건들은 지방자치단체와 계약한 청소업체의 노동자들이 수거해 갔을 것이다. 우리는 청소노동자들과 마주친 적이 없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가 일어나기 전인 새벽에 와서 이것들을 수거해 간다. 청소노동자들은 종이나 유리병 같은 재활용품은 재활용 업체로 보내고, 나머지 생활 쓰레기는 수도권 매립지나 소각장으로 보냈을 것이다.

우리가 버리는 것은 잉여, 쓰레기, 폐기물이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우리가 함부로 버린 것들은 우리를 역습한다. 버린다는 것은 눈앞에서 치운다, 사라지게 한다는 뜻이다. 나와 격리된 장소에 내놓는 것들은 이미 필요와 욕망을 다했기에 굳이 내가 그걸 끼고 있을 이유가 사라진 탓이다. 우리가 버린 것들, 이 잉여물을 다시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쓰레기통은 검은 구멍, 버려진 것을 삼키는 블랙홀이다. 플라스틱, 과자 봉지, 온갖 포장재들, 철 지난 잡지와 신문들, 음식을 조리하고 남은 것들은 이 검은 구멍 속으로 사라진다. 쓰레기 하치장은 조금 더 큰 검은 구멍, 더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삼키는 블랙홀이다. 소르본 대학의 철학교수인 미셸 푸에슈는 “이 모든 것들이 커다란 검은 구멍 안으로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라고 쓴다. 인간에 의해 제조된 물건들의 미래는 쓰레기다. 그 점에는 단 한 점의 모호함도 없이 명확하다. 쓰레기가 되어 버려진 물건은 매립되거나 소각되는데, 그렇게 물건들은 제 주어진 소명을 다하고 검은 구멍 안으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생명은 탄생하고, 물건은 제조된다. 탄생하는 것과 제조되는 것의 운명은 다르다. 생명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 반면 물건의 미래는 예측 가능한 범주에 있고, 인간에 의해 통제가 가능하다. 인간은 정신이라는 심연과 수시로 변하는 감정을 품고 살아간다. 따라서 인간은 예측할 수 없고, 기계적으로 통제할 수도 없다. 그러나 생명과 물건의 최종 귀착지는 같다. 생명이건 일회용품이건 그 수명을 다하면 버려진다는 점에서 똑같다. 그것들은 다 무(無)와 공(空)의 세계로 사라진다. 다만 생명의 성분들(물, 탄소, 질소 따위)은 죽음과 함께 분해되어 땅으로 돌아가고, 이것들은 다시 생명의 순환 고리 속에서 다른 생명으로 이동한다. 재활용 단계를 건너뛰고 버려진 물건들은 순환 운동과 단절된 채로 쓰레기 매립지에서 썩거나 소각로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생산과 제조가 없다면 쓰레기도 없다. 쓰레기는 생산과 제조의 과정에서 떨어져 나오는 잉여이고, 부산물이다. 잉여는 쓸모를 다 하고 관계의 맥락에서 떨어져나간 모든 것을 포괄한다. 굳이 그게 없더라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것, 남아도는 것, 그게 잉여다. 매립지에 묻히거나 소각시설에서 태워 없애는 폐기물은 재활용이라는 순환에서 벗어나 마지막 단계에서 완전하게 ‘버려진다’. 사람은 많은 물건들을 버리며 사는데, 컴퓨터에서 쓸모를 다한 물건을 버렸을 때 우리는 그것들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매립이나 소각은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눈앞에서 치워주는 효과를 낳는다. 우리는 버려진 물건들과 멀리 할 뿐만 아니라 영원히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폐기물, 우리가 ‘쓰레기’라고 하는 이것이 21세기 인류의 과제 중 하나로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것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이내 악취를 풍기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물질로 변한다. 쓰레기의 분리와 파괴는 현대의 낭비사회에서 삶의 전반에 침투하고 영향을 끼친다. 청소업체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일손을 놓으면 곧 쓰레기 대란이 일어난다. 도처에 쓰레기가 쌓이고 악취가 진동할 때 존재감이 없던 청소노동자의 존재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우리의 삶을 쓰레기 더미와 위생적으로 분리하고 우리를 오물 더미에서 구출해 냈던 것이다. 우리가 잠든 새벽에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청소노동자들은 비록 화사한 모습은 아닐지라도 “찬미 받지 않는 현대의 영웅들”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쓰레기 및 쓰레기 처리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사유를 펼쳐 보여준다. 바우만은 쓰레기가 “우리 시대의 가장 괴로운 문제인 동시에 가장 철저하게 지켜지는 비밀”이라고 규정한다. 그것은 “모든 생산의 어둡고 수치스러운 비밀”이다. 그런 맥락에서 “[쓰레기 문제가] 사회생활의 가장 중요한 분야 전반에 침투해 삶의 전략을 지배하고 가장 중요한 생활 활동들을 다양한 색깔들로 물들이며, 이를 통해 각자 고유한 쓰레기(사산된, 부적합하고, 쓸모없고 유지될 수 없는 인간관계 곧 폐기처분될 것이라는 표시가 찍힌 채 태어나는 인간관계)를 만들어내도록 부추긴다”라고 말한다.

인간이 배출하는 쓰레기는 지구 바깥으로 내보낼 방법이 없다. 우리는 “지구는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거대한 우주 비행선”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눈앞에서 사라진 쓰레기는 고작해야 이곳에서 지구의 저곳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내가 거주하는 수도권의 매립지에는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역 64개 기초자치단체에서 생긴 생활폐기물, 사업장폐기물, 건설폐기물 등을 한데 모아 매립하는데, 날마다 수도권에서 들어오는 폐기물의 양은 엄청나다. 수도권 매립지는 곧 포화 상태에 이를 테다. 현재 사용하는 폐기물 지상 매립지의 사용 종료 시점은 2025년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경기도, 환경부는 서둘러 수도권 대체 매립지를 찾아야 할 처지다. 올해 5월과 7월 두 차례나 새로운 매립지 공모를 했음에도 여기에 응한 지자체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2차 공모에서 매립지 부지면적을 줄이는 등 공모 조건을 느슨하게 했지만 대체 매립지를 찾지 못했다. 대체 매립지를 찾는 데 실패한 정부는 여러 대안을 강구했으나 별 뾰족한 대책이 없어 난감한 상황에 빠진 상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평생 금욕생활을 한 철학자이다. 누구나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 외엔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 그는 사는 데 남루한 옷 한 벌과 지팡이, 흙으로 구운 물컵 하나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어느 날 옹달샘에서 한 소년이 두 손을 모아 물 떠먹는 것을 보고 흙으로 구운 물컵마저 버렸다. 잘 버리는 사람은 물건에 대한 욕심을 비운다. 디오게네스가 그랬듯이 물건에 대한 욕심이 적은 사람은 복잡한 삶보다 단순한 삶을 더 좋아한다. 그들은 많은 물건들에 둘러싸여 살기보다는 늘 검소하고 절제하며 사는 방식을 선택한다. 사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거머쥔 채 살아간다. 더 많이 버리고 비우자. 잘 버려야 잘 산다. 더 많이 버리고 마음의 욕심을 비우자. 그것은 뺄셈의 삶을 산다는 뜻이다. 나이 들수록 뺄셈의 지혜를 체득해야 한다. 잘 살기 위해 버리기의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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