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새로운 신기록이 쏟아지며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상장 후에는 주가가 내리막길을 걷는 경우가 많아 투자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IPO 당시 기업가치 산정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신규상장 101개 중 절반 이상은 ‘주가하락’ = 25일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신규상장된 101개 종목 중 상장 당일 종가 대비 현재 주가가 높은 종목은 41개로 절반에 못 미쳤다. 코스피 지수가 지난해 1월 2일 2175.17로 시작해 지난 23일 3254.42로 49.61% 상승 랠리를 이어갔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진한 성적이다.
상장 이후 코스피 지수와 비교해 높은 상승폭을 보인 종목은 이보다 더 적은 29개다. 사실상 기관투자자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공모주 투자를 제외하면, 실제 시장에 나온 이후 부진한 실적을 보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지난해 7월 상장한 와이팜은 상장 당일보다 51.2% 내린 수준(22일 종가 기준)에 거래 중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44.5% 상승했다. 지난 11월 상장한 교촌에프앤비도 30.3% 내렸다. 코스피는 31.3% 올랐다. 지난해 7월 상장한 SK바이오팜은 코스피가 52.2% 상승하는 와중에도 2.4% 하락했다. 오로스테크놀로지도 코스피가 8.5% 오르는 와중에도 36.0%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IPO시장은 뜨겁다. 지난 5월 증시에 입성한 SKIET의 공모청약에는 증거금만 80조9000억 원이 유입됐다. 앞서 SK바이오사이언스가 세운 63조6000억 원을 넘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26일과 27일 청약을 시작하는 카카오뱅크도 이에 버금가는 신기록이 예상된다. 또 지난 16일 상장한 에스디바이오센서에도 30조 원이 넘는 청약증거금이 몰렸고, 솔루엠,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등도 10조 원대 청약증거금을 끌어들인 바 있다. 엔비티, 맥스트 등은 역대 최대 경쟁률을 새롭게 썼다.
공모시장 열풍은 현재 진행형이다. 다음달에는 롯데렌탈, 일진하이솔루스 등 1조원대 IPO가 진행될 예정이다. 하반기에는 LG에너지솔루션, 현대중공업, 카카오페이, 현대엔지니어링이 IPO에 나설 것으로 보이며, 현대오일뱅크도 내년 상반기 상장을 목표로 주관사 선정에 나서고 있다.
김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공모청약에 자금이 몰리는 이유는 이른바 따상(공모가 대비 2.6배)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라며 “것이다. 일부 종목은 국내 유사기업과의 비교를 거부하고 해외 종목과의 비교를 통해 기업가치를 상정하지만 공모참여자들에게 이는 의미가 없다. 상장 첫날의 주가가 공모가보다 높기만 하면 그것으로 수익을 확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상장 후 하락 공식, 주범은 ‘공모가 산정방식’ = 전문가들은 IPO기업들이 상장 후 주가 하락을 겪는 이유에 대해 공모가 산정 방식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IPO 이전과 이후 투자 자금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영향을 끼친다고 봤다.
IPO기업의 몸값, 즉 공모가는 유사기업과의 특정 지표를 비교해 확정된다. 최근 공모가 논란을 겪은 카카오뱅크와 크래프트를 살펴보면 시장에서 이 비교가 적절했는지 논란이 발생한 경우다.
카카오뱅크 주관사는 비교 대상 회사로 국내 시중은행이 아닌 로켓 컴퍼니, 파그세구로 디지털, TCS 그룹홀딩스, 노르드넷 등 외국 회사 4곳을 선정했다. 덕분에 카카오뱅크에 PBR(주가순자산비율) 7.3배를 적용할 수 있었다.
KB금융(0.51), 신한지주(0.48), 우리금융지주(0.35), 하나금융(0.42) 등 올해 시중은행 올해 PBR 예상치의 14~20배 수준이다. 이후 기관 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이 흥행하면서 공모가가 희망밴드 상단으로 결정됐고, 시가총액 18조5000억여 원이 결정됐다. 이는 시총 기준 금융주 1위 KB금융(21조7052억 원)과 2위 신한금융(19조8116억 원)에 이은 3위다.
크래프톤은 정정 전 증권신고서에서 기업가치를 산정하면서 비교 대상으로 엔씨소프트ㆍ넷마블 등 국내외 대형 게임회사 7곳과 월트디즈니, 워너뮤직그룹 등 글로벌 콘텐츠 업체 2곳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시가총액 25조 원(공모가 상단 기준) 수준을 제시했다. 이후 금융감독원의 권고에 따라 공모가 밴드를 10% 가량 줄였지만, 그럼에도 게임 업종을 영위하는 엔씨소프트(17조8267억 원), 넷마블(12조2914억 원)보다 훨씬 크다.
비교대상 기업과 지표를 산정하는 증권사가 공모금액에 비례해 수수료를 받는다는 점에서 고평가 논란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카카오뱅크 상장주관사와 인수사들은 204억 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받을 예정이고, 크래프톤은 112억 원이 넘는 수수료를 지불할 예정이다.
IPO 이전과 이후에 투자되는 자금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청약시장은 과열의 양상을 보이지만, 청약에 참여했던 자금은 상장과 함께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공모를 통해 주주가 되는 것은잠시뿐이다다. 이들에게 공모청약은 은행이자보다 나은 수익률로 여윳돈을 굴리거나, 대출이자보다 나은 수익률을 얻기 위한 수단이란 지적이다.
김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높은 가치를 적용받는 신규 IPO 종목의 등장은 증시몸집을 높인다”면서도 “하지만,기존 상장된 종목의 수익률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IPO 종목 역시도 상장과 동시에 기존 종목이 되어버린다. IPO에 대한 높은 관심이 증시의 자금 유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현재 증시에 팽배해 있는 지나친 낙관론”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