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6월의 어느 날, 경상북도 구미에 있는 티케이케미칼 폴리에스터 공장. 입구에 발을 들이밀자마자 펄펄 끓는 불한증막에 들어선 듯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실내 온도는 45℃.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을 내는 기계에서는 가느다란 실이 물줄기처럼 빠른 속도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250℃ 이상의 고온에서 녹인 리사이클 페트칩이 찬 공기를 만나 실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실이 둘둘 말려 포장되면 공정은 끝난다. 티케이케미칼의 친환경 원사 ‘에코론(고품질 투명페트병을 재활용한 원사)’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 공장은 에코론의 밑바탕이 되는 페트칩(K-rPET칩)을 실로 뽑아내는 공정을 담당한다. 버려진 페트병이 실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은 전국 각지에 흩어진 공장이 나눠 맡는다. 엄선된 폐페트병을 강원도 횡성 공장에서 잘게 쪼개면, 경북 고령 공장에서 쌀알만큼 작은 크기의 K-rPET칩으로 변환시켜 구미 공장에 보낸다. 페트칩을 녹여 뽑아낸 실은 티셔츠, 신발, 전자책 케이스, 샴푸 통이 된다. 구미 공장에서 생산하는 리사이클 원사만 월 100톤 규모다.
리사이클 원사를 만드는 핵심 기술은 K-rPET칩에 집약돼있다. 옷, 샴푸통과 같은 대부분의 플라스틱 제품은 쌀알 크기의 플라스틱 칩으로 이뤄져 있다. K-rPET칩이 곧 리사이클 원사의 누에고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리사이클 원사는 일반 원사보다 공정이 훨씬 까다롭다. 페트병 중에서도 투명하고 깨끗한 페트병이어야만 의류용 원사로 재활용할 수 있다. K-rPET칩은 오로지 버려진 페트병으로만 이뤄진다. 이물질이 조금이라도 들어있으면 실이 끊어져 버린다.
임영철 티케이케미칼 구미 공장장은 “굉장히 까다로운 공정이라 깨끗하게 진행돼야 한다”며 “보통 머리카락 굵기의 8분의 1부터 100분의 1인 미세한 실 한 가닥에 이물질이라도 끼어있으면 실이 끊어져 버린다. 정상적인 공정을 거치더라도 40% 이상은 손실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리사이클 원사 생산량을 늘리는 건 수요가 국내외에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티케이케미칼 공장에서 국내 리사이클 섬유 수요 신장률은 연평균 4~5%대, 용기는 9%, 글로벌 수요는 6.5% 수준으로 꾸준히 오르고 있다. 구미 공장에서 생산하는 플라스틱 중 리사이클 생산 비중 역시 지난해 2%로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아웃도어 용품업체 블랙야크와 맺은 K-rPET 재활용 체계 협약(MOU)으로 수요가 늘면서 블랙야크 주문량의 100%를 맞추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김영도 티케이케미칼 품질기술개발팀장은 “수요가 워낙 많아서 공급이 못 따라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향후 리사이클 원사 생산 비중을 10%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라고 말했다.
임 공장장은 “아디다스, 에스티로더 등 글로벌 기업들도 리사이클을 안 쓰면 사실상 장사를 안 하겠다고 공표한 상황이다. 나이키의 경우 연내 플라스틱 섬유를 50% 사용한다고 했다”면서 “우리도 이제는 선택이 아니다. 수출하려면 리사이클 칩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리사이클 페트칩은 용기용, 의류용 실로 만들어져 티케이케미칼과 협약을 맺은 블랙야크 티셔츠, 코스메틱 업체 아모레퍼시픽의 친환경 용기로 재탄생한다. 앞서 블랙야크와 아모레퍼시픽은 티케이케미칼과 각각 K-rPET칩을 활용한 의류, 화장품 용기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다.
블랙야크는 ‘BYN 자원순환 프로젝트’를 내세워 국가, 지역, 소비자가 하나로 연결되는 지속 가능한 자원순환 생태계 구축과 관련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리사이클 의류가 만들어지려면 평소에 페트병을 분리 배출하는 것부터 수거 단계에 이르기까지, 기업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 지자체의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블랙야크는 지난해 5월 티케이케미칼을 시작으로 환경부, 강원도, 강릉시, 삼척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배출-재활용-제품 생산-소비’까지 이어지는 투명 페트병 자원순환시스템을 구축했다. 최근에는 강남구를 포함해 서울시 7개 자치구, 전국 지자체와도 업무 협약을 맺으며 투명 페트병 수급 및 제품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블랙야크는 페트병으로 만든 의류를 모은 ‘플러스틱 컬렉션’을 선보였다. K-rPET 재생 섬유에 아웃도어의 기술력을 더해 ‘친환경’과 ‘기능성’을 모두 제품에 담아냈다. 제품은 티셔츠, 재킷, 팬츠 등 다양하게 구성됐으며 종류에 따라 제품당 500㎖ 기준 최소 15개부터 최대 30개 이상의 페트병이 재활용됐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해피바스’, ‘프리메라’ 브랜드 화장품 용기에 리사이클 원료를 적용한다. 지난해 환경부, 포장재 재활용사업공제조합 등과 맺은 고품질 투명 페트병의 화장품 용기화를 위한 자발적 협약의 일환이다. 생수병(2ℓ 기준) 3개를 바디워시 용기(900㎖ 기준) 1개로 재탄생하게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친환경에 대한 고객들의 니즈가 커지고 있어 친환경 경영은 필수라고 보고 있다”면서 “플라스틱 절감 외에도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자’는 명제 아래 기업 시민으로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