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어떨까. 기후위기가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국내 도시들도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정부가 2050년까지 탄소 중립 실현을 목표로 삼으면서 ‘그린 시티’ 조성을 위한 지방정부의 역할론도 커지고 있다. ‘맏형’격인 서울시를 필두로 주요 관광 도시들이 추진하고 있는 탄소 중립 관련 사업을 짚어봤다.
강원도 강릉시는 10여 년 전부터 ‘저탄소 녹색 시범 도시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강릉시는 저탄소 도시의 미래상을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삶이 있는 도시’로 정해 과거로부터 면면히 이어지는 향토문화가 일상에서 숨 쉬고, 미래지향적인 가치관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조성하고자 했다. 구체적으로는 △탄소제로도시 △자연생태도시 △녹색관광문화도시 등 개발 목표를 정했다.
강릉시는 저탄소 녹색 시범 도시 조성을 위해 친환경 토지 이용, 녹색 교통, 자연생태, 에너지 효율화, 물·자원순환, 녹색 관광, 그린 IT 및 U-City, 녹색 생활 실천의 8개 부문으로 구분했다. 생태 마을과 생태 자연공원을 조성하고 친환경 산업단지 등을 필두로 녹색기술 복합단지를 조성, 기존 숲을 최대한 보전하면서 탄소제로 하우스 주거단지를 만들겠다는 구상이 담겼다.
‘이젠(E-zen)’은 강릉시의 저탄소 도시사업이 총집약된 랜드 마크다. ‘이젠’은 강릉 녹색 도시체험센터의 별칭으로, 태양광과 지열 등을 이용해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생산, 소비하는 에너지 자립형 건물이다. 화석연료 대체 시스템을 갖춰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친환경 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태양광과 지열 등 순수 청정 자연 에너지만을 사용하는 이젠은 자연채광을 위한 유리의 에너지 손실 최소화를 위해 3중창을 적용했다. 통합컨벤션동 지붕과 체험연수동 발코니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설비를 이용해 지난해 기준 태양열, 지열 총합 190만 kWh의 전력을 생산, 대용량 에너지 저장장치를 통해 낮에 저장해 뒀다가 일몰 뒤 체험연수동의 야간전력으로 활용한다. 건물의 냉난방과 급탕을 위해서는 지열 히트펌프시스템을 도입했다. 강릉시는 건물 냉난방비로 연간 약 1억8400만 원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젠’을 필두로 강릉시의 친환경 행보는 ‘현재진행형’이다. 습지를 복원하고, 녹색교통 및 신재생 에너지, 물 자원 및 녹색 생활 등의 사업을 추진한다. 강릉시는 경포호 및 순포개호 생태습지를 복원했고, 대관령 ‘치유의 숲’을 조성했다. 이에 따라 습지의 생물 다양성이 확보되고 하천정비 및 생태 저류지 조성을 통한 여가 및 친수 공간 활용 등의 효과를 보고 있다.
박효재 강릉시청 환경과 습지 보전 주무관은 “저탄소 녹색 시범 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각 부서에서 친환경 관련 사업이 명맥을 잇는 중”이라며 “경포가시연습지, 순포습지 등 습지 복원 사업은 물론 사후관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탄소 제로 관련 사업과 함께 이에 바탕이 될 수 있는 생물 다양성 증대, 습지에 대한 대중 인식 증진에 대한 개선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최근 국내 도시로는 처음으로 ‘2050 온실가스 감축 추진계획’을 도시 기후 리더십 그룹(C40)에 제출했다. C40는 2005년 설립된 기후변화 대응을 약속한 대도시들의 모임으로, 회원 도시들은 ‘2050 탄소 중립’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 제출해야 한다.
C40는 파리기후협정을 계기로 온실가스 발생의 주요 원인인 에너지 사업이 도시에서 주로 이뤄지는 점을 고려해 회원 도시들이 선도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해 달라고 요청했다. 뉴욕, 로스엔젤레스(LA), 런던, 파리 등 미국과 유럽 22개 도시가 이미 제출을 완료한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이 처음으로 C40에 합류했다.
앞서 서울시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기본 정책 방향을 담은 ‘그린 뉴딜 추진을 통한 2050 온실가스 감축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선언은 앞서 나온 보고서를 토대로 부문별 세부 사업계획을 담아 구체화했다.
‘2050 온실가스 감축 추진계획’은 △그린 빌딩 △그린 모빌리티 △그린 숲 △그린 에너지 △그린 사이클 등 5대 부문의 74개 세부 과제로 구성돼있다. 서울시는 이 계획에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05년 대비 40% 줄이고 2050년에는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저탄소도시 사업의 핵심은 ‘건물’이라고 서울시는 보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에서 배출되는 전체 온실가스의 약 70%가 건물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제로 에너지 빌딩(ZEB)’ 사업을 추진한다. ZEB란 건축물에 필요 에너지 부하를 최소화하고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에너지 소요량을 최소화하는 녹색 건축물이다. 서울시는 이에 따라 올해부터 전체면적 1000㎡ 이상인 시 소유 공공건물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한하는 ‘건물 온실가스 총량제’를 도입하고 관련 사업을 추진한다.
관광지인 제주도는 2012년 ‘카본 프리 아일랜드(Carbon-Free Island) 2030’을 선포하며 제주형 온실가스 저감 정책을 일찍이 제시했다. 카본 프리 아일랜드는 ‘탄소 제로 섬’을 뜻하는 말로, 신재생 에너지를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제주도의 지역적 특성을 활용해 지속가능한 섬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핵심 지표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100%까지 끌어올리고 도내 자동차의 75%를 전기차로 바꾸는 것이다.
실제로 제주도의 총 전력 사용량 중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6년 11.55%에서 2019년 14.34%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내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전기차 보급률 2만 대를 넘어서기도 했다.
2019년에는 전국에서 최초로 전기차 배터리 산업화센터를 열었다. 전기차에서 사용하고 남은 배터리를 재활용하기 위한 곳이다. 제주도가 전기차 배급속도가 전국에서 빠른 곳으로 꼽히는 만큼 폐배터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도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해당 사업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공모사업인 전기차 폐배터리 재사용 기반 구축 사업에 선정돼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 86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앞으로 제주도는 저탄소 관련 정책을 더 강화할 방침이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2050 탄소 중립’ 비전을 선언한 이후, 2050 장기 저탄소 발전 전략을 유엔에 제출한 데 따라 제주도 역시 이와 연계한 ‘2050 기후변화 대응계획’을 수립했다. 기존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보다 더 강화된 정책이다.
제주도는 앞서 지자체 관리 권한이 있는 비산업 부문을 대상으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치를 BAU(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인위적인 조처를 하지 않았을 때의 배출량) 대비 33% 감축으로 잡았다. 제주는 에너지 전환 위주의 기존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넘어 2050 탄소 중립 전략을 포함하는 기후변화 대응계획을 수립한다.
충청남도 당진시는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포한 데 이어 ‘2050 탄소 중립’ 목표를 설정하고 발전 계획을 마련했다. 당진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시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7400만 톤으로 이 중 발전과 철강 생산이 96%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도시 중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도시로, 이번 2050 탄소 중립 선포를 계기로 ‘위기의 도시’에서 ‘기회의 도시’로 탈바꿈하겠다는 구상이다.
당진시는 이를 위해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7년과 비교해 50%까지 줄이겠다는 액션 플랜을 세웠다. 우선 탈 석탄 전환위원회를 설치해 당진시의 대표 온실가스 배출원인 화력발전소의 가동중단을 꾀한다. 국가의 전력 수급원을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친환경 발전으로 전환을 유도한다.
신재생 에너지를 활용한 산업기반도 구축한다. 전기와 수소 등 신재생 에너지를 활용하는 산업단지를 짓는 것이다. 당진시는 이를 위해 사업비 약 150억 원을 투자해 송산면 가곡리 일원 시유지에 14만 평(약 46만㎡)에 달하는 RE100 산업단지를 2023년까지 조성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