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탈레반, 20년 만에 아프간 재점령...베트남전 종전 방불케 하는 혼란

입력 2021-08-16 15:16 수정 2021-08-1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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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주민과 외교 공관원 탈출 행렬에 공항 아수라장
미군, 공중에 경고 사격도
미국, 주둔 병력 철수 계획 오판 사실상 인정
WP, 예전과 다른 탈레반의 유화 제스처에 주목하기도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재점령했다. 세계 각국 정부는 대사관 직원들을 철수시키고 자국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현지 주민과 외교 공관원들의 탈출 행렬에 아프간 곳곳에서 베트남전 종전 당시를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이 연출되고 있다고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탈레반은 이날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대통령궁까지 장악했다. 모하마드 나임 탈레반 정치국 대변인은 대통령궁 장악 직후 “아프간에서의 전쟁은 모두 끝났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이어 “조만간 통치 유형과 정권 형태가 분명해질 것”이라며 “우리는 시민과 외교 공관의 안전을 제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설명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곧바로 국외로 도피했다. 가니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 나는 어려운 선택을 했다. 지난 20년간 몸 바친 소중한 국가를 떠나야 했다”며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선 차라리 떠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대통령 행선지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외교부는 “아프간 상황이 급격히 악화해 우리 대사관을 잠정 폐쇄키로 하고 공관원 대부분을 중동 지역 제3국으로 철수시켰다”며 “다만 아프간에 체류 중인 재외국민 1명의 안전한 철수 등을 지원하기 위해 현지 대사를 포함해 일부 공관원이 현재 안전한 장소에서 본부와 긴밀히 소통 중”이라고 알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아프간에 잔류한 공관원과 우리 교민들을 마지막 한 분까지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며 “현지 상황도 신속하고 소상하게 국민께 알려야 한다”고 관계 당국에 지시했다.

미국 국무부는 이날 밤 모든 대사관 인력이 전원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으로 대피했다고 밝혔다. 인력 철수에 앞서 대사관에 걸려 있던 성조기도 내려졌다.

영국도 지상군 600명을 현지에 급파해 공관원 500여 명을 대피시켰고 대사관도 철수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폐쇄하기로 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조만간 의회를 소집하고 대테러 전략 등에 대해 논의한다.

독일 역시 대사관을 폐쇄하고 직원들을 카불 공항의 군사 구역으로 대피시켰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교민과 공관원들이 수일 내로 아프간을 떠날 수 있도록 모든 조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밖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를 비롯해 캐나다와 스웨덴, 일본 등도 대사관 인력을 철수하거나 대피시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와 파키스탄 등 일부 국가는 자국 대사관을 철수할 계획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표명하면서 현지 분위기 파악에 들어갔다. 드미트리 쥐르노프 아프간 주재 러시아 대사는 “탈레반이 외교공관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밝혔다”며 “우리는 정상적으로 대사관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공군이 1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도착해 작전을 기다리고 있다. 카불/로이터연합뉴스
▲영국 공군이 1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도착해 작전을 기다리고 있다. 카불/로이터연합뉴스
아프간 현지인까지 대피 행렬에 나서면서 카불 공항은 아수라장이 됐다. 스카이뉴스는 “절망에 빠진 수백 명의 현지인과 외국 공관원들이 탈출을 시도하면서 카불 공항에서 혼란스러운 장면이 목격됐다”며 “비행기 좌석을 얻지 못한 사람들끼리 난투극이 벌어졌고 출발 예정이던 일부 노선 운항이 갑자기 중단됐다”고 전했다. 미군은 16일 공항에 수천 명 시민이 몰려들자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을 우려해 공중에 경고 사격했다.

현지 매체들은 카불 도심과 공항에서 여러 차례 폭발음과 총성이 들리는 등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 등 65개국은 공동 성명을 통해 아프간 현지 주민의 출국을 허용할 것을 탈레반에 촉구했다.

이번 사태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미국은 주둔 병력 철수 계획에 대한 오판을 사실상 인정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정부군이 국가를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그것(붕괴)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일어났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대사관 인력을 공항으로 이동시켰으며, 안전과 보안에 최우선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우리 군과 인력을 공격하면 매우 강력하고 단호한 대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탈레반에 분명히 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이날 공관원 대피 작전을 위해 현지에 병력 1000명을 추가 파견했다.

한편 탈레반이 과거 정권을 장악했던 것과 달리 이번 사태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육군사관학교의 토머스 러티그 연구원 논문을 인용해 “2001년 9·11 테러 이후 탈레반은 외부 요인에 더 개방적이게 학습됐고, 더 정치적인 조직이 됐다”며 탈레반의 변화에 주목했다. 모하마드 나임 탈레반 정치국 대변인이 승리 선언과 함께 가장 먼저 외교 공관의 안전을 약속한 점이 대표적이다. 다만 WP는 “탈레반이 대통령궁으로 진격하는 모습을 지켜본 자국민들은 국경을 넘어 새 정권이 시작하기 전에 나라를 떠나려 한다”며 여전히 어두운 전망이 도사리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16일 카불 국제공항 앞을 지키고 있다. 카불/로이터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16일 카불 국제공항 앞을 지키고 있다. 카불/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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